왜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가 K리그에 절실하게 와 닿을까[최규섭의 청축탁축(清蹴濁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승하(8일·이하 현지 일자)한 지 닷새가 흘렀다. 그러나 영국은 아직 깊은 슬픔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치와 사회 등 모든 분야는 애도의 물결에 휩싸여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태다. 비탄에 잠긴 온 국민의 모습에선, 엘리자베스 2세가 얼마나 존경받는 군주였는지가 여실히 엿보인다. 비록 눈을 감긴 했어도 행복한 영면일 듯싶다.
70년 214일! 엘리자베스 2세가 재위한 기간이다.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군림했고, 특히 여왕으로서는 전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보위를 지켰음을 실감케 하는 기나긴 세월이다.
1952년 2월 즉위한 엘리자베스 2세는 32개 영연방 왕국의 군주를 겸하였다. 이들 국가의 면적은 러시아(1,710만㎢)보다도 넓은 1,880만㎢에 이른다. 곧, 역사상 가장 많은 왕의 칭호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제일 넓은 영토를 영솔한 수장이었다.
물론, 엘리자베스 2세는 현대적 입헌군주제 상태의 군주였기 때문에, 정치적 실권은 없었다. 그러나 탈식민화의 거센 흐름 속에서, 저물어 가는 대영제국의 권위를 되살리려 애오라지 헌신한 일생은 국민의 존경심을 자아내는 데 차고 넘쳤다. 왕세녀 시절, “내 삶이 길든 짧든 평생토록 국민을 섬기는 데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하겠음을 국민 앞에 선서한다”라는 맹세에 완벽하게 충실했던 한평생이었다. 한마디로,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라는 입헌군주제의 전형을 실현한 국왕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가 쏟은 각별한 애정은 오늘날 EPL이 융성한 밑거름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도 매한가지다. 연일 엘리자베스 2세를 기리는 기사를 홈페이지에 올리는 데서, 애상의 정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음을 역력히 느낄 수 있다.
서거 이튿날, 리처드 마스터스 EPL 최고경영자(CEO)는 “여왕 폐하(Her Majesty The Queen)의 특별한 삶과 국가에 대한 공헌을 기리기 위해, 그리고 존경을 나타내기 위해 리그를 일시 중단(7라운드 연기)키로 했다”라고 홈페이지에 발표했다. 마스터스 CEO는 “EPL과 소속 각 클럽은 여왕 폐하께서 우리나라에 오랫동안 변함없이 봉사하신 데 대해 경의를 표하고 싶다. 가장 오랫동안 봉사한 군주로서 EPL에도 놀라운 유산을 남긴 헌신의 삶이었다”라며 비애를 감추지 못했다.
애도의 흐름은 끊이지 않았다. 13일엔, 엘리자베스 2세와 맺은 깊었던 연(緣)을 추억하며 추도하는 각 클럽과 관련 인사의 글이 잇달았다. 모두가 엘리자베스 2세의 치세 70년 동안 쌓인 유대감을 강조하는 글과 추억이었다.
켄 프리어 아스널 평생 회장은 통치 기간 내내 한 클럽에 몸담은, 그야말로 ‘아스널 맨’이다. 프리어 회장은 이 기간에 엘리자베스 2세를 두 차례 알현했다. 한 번은 2000년에 OBE(Officer of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 대영제국 훈장 4등급)를 서훈받을 때였고, 다른 한 번은 6년 뒤 아스널이 버킹엄궁을 방문했을 당시였다.
“아스널이 여왕 폐하의 통치 기간에 번영할 수 있었음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클럽에서 근무하는 내내 여왕 폐하가 강조했던 성실성, 헌신, 충성심, 우수성과 같은 가치를 아스널에서 구현하려 애썼고 잊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2세와 첼시의 인연도 남달랐다. 첫 연을 맺은 시기는 물경 7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 공주 시절 가족과 함께 웸블리 스타디움을 찾아 풋볼리그컵 결승 첼시-밀월전을 관람한 데서 비롯했다. 엘리자베스 2세가 지켜본 많은 클럽 대항 경기 가운데 첫 번째였다. 또한, 엘리자베스 2세는 2004년 잔프랑코 졸라에게 명예 OBE(외국인 대상)를, 2016년 에마 헤이즈 여자팀 코치에게 MBE(Member of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 대영제국 훈장 5등급)를 각각 서훈하기도 했을 만큼 첼시에 애정을 나타냈다.
1878년 창단된, EPL 최고 명문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는 오랜 전통만큼이나 추억거리도 많다. 엘리자베스 2세가 맨유와 공식적으로 처음 만난 시기는 1957년이었다. 1956-1957시즌 FA컵 결승전에서 애스턴 빌라에 분패(1-2)했던 맨유는 여왕으로부터 준우승 메달을 받았다. 이듬해 뮌헨항공 참사를 겪었던 맨유는 “당시 여왕 폐하가 ‘사상자와 그 가족에게 깊은 애도의 마음을 표한다’는 진심 어린 위로의 말을 전해 왔다”라고 그때를 되돌아보며 엘리자베스 2세의 영면을 기원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비록 이 세상을 떠났지만, 영원히 영국 국민의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을 듯싶다. 늘 한결같이 잔잔한 미소를 띤 얼굴로 국민에게 다가갔던 군주의 인자한 모습은 그들의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을까 싶다. 군주는 국민을 사랑했고, 국민은 군주를 존경했다.
K리그도 이처럼 사랑과 존경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지도자의 존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껴진다. 자체 역량만으로는 좀처럼 비약의 나래를 펴는 데 두꺼운 벽이 가로막고 있는 현실에 갇힌 K리그 아닌가.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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