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베트남, 국민 중 절반만 은행 계좌 보유.. 갈길 먼 디지털 금융

호찌민(베트남)=박슬기 2022. 9. 14.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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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S리포트-다시 뛰는 신남방, 'K금융' DNA 심는다②] "결제시장서 대전환 오는 티핑포인트 위해 선점한다"

[편집자주]베트남은 인도와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 등 한국 정부가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신남방 11개국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다. 한국 기업들은 2021년 기준 9895만명의 인구와 IMF(국제통화기금) 추정 경제성장률 6.6%를 기록한 베트남에 크게 공을 들이고 있다. 베트남은 중국, 미국에 이어 한국의 3위 교역국이기도 하다. 국내 금융사들도 금융 서비스 노하우를 무기로 현지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한국의 ICT(정보통신기술)를 바탕으로 휴대전화를 통한 금융거래, 결제 서비스도 현지인들에게 충분히 통할 것으로 보고 있다. K-금융은 베트남 경제수도인 호찌민을 조용히 물들이고 있다. 조만간 베트남 금융시장이 한복으로 갈아입을 것이란 기대감도 크다.

베트남 호찌민에서 오토바이로 이동하는 현지인들./사진=박슬기 기자
◆기사 게재 순서
① "코리아뱅크 굿" 한국 은행들, 베트남 홀렸다
② 베트남, 국민 중 절반만 은행 계좌 보유… 갈길 먼 디지털 금융
③ "서류 내고 돌아서니 보험금 '뚝딱'… 베트남과 달라요"
④ "주식이 뭐예요?"… 베트남 증권시장, 韓에 열려있다
⑤ 예영해 삼성화재 베트남법인장 "베트남 기업보험 개척자… 로컬기업과 협업에 신규 채널 확보까지"
⑥ 이의철 신한라이프 베트남법인장 "텔레마케팅, 안된다고?… 신한라이프 베트남, 차별화로 대박쳤다"
⑦ 강규원 신한베트남은행 법인장 "3년 안에 베트남 12위권 은행으로… 2030년엔 톱10 안에"
⑧ 박원상 한국투자증권 베트남법인장 "베트남 톱티어 증권사 될 것"… 글로벌 도전장
⑨ 강문경 미래에셋증권 베트남법인 대표 "MTS 베트남 최고 수준이라 자부… 올해의 화두는 디지털화"
⑩ 정희균 토스베트남 PO "젊고 빠른 성장세, 베트남의 매력"
호찌민(베트남)=박슬기 기자 "도착했습니다. 현금으로 주세요."

베트남 최대도시 호찌민의 롯데호텔사이공에서 출발해 10분 정도 지나 최대 쇼핑명소인 사이공스퀘어에 도착하자 택시 기사는 기자에게 현금을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세계 4위 오토바이 보유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새벽 5시만 돼도 길거리에는 오토바이가 내는 굉음들로 가득하다. 이에 더해 길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승차공유서비스인 '그랩'이다. 택시대란이 일었던 한국과 달리 베트남 호찌민에선 그랩과 법인택시인 비나썬을 잡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호찌민에 관광하러 온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그랩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택시를 호출한 뒤 현금으로 결제하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그랩 앱에서 카드 등록 절차가 워낙 까다로워서다. 기자 역시 그랩 앱에 카드를 등록하려 했지만 '해당 카드가 지원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떴다.

그랩은 자동차뿐만 아니라 오토바이도 부를 수 있는데 현지인들은 주로 오토바이 택시인 '그랩바이크'를 일상적으로 이용한다. 그랩바이크의 이용료는 택시의 절반 수준으로 거리 곳곳에선 그랩바이크를 탄 뒤 목적지에 도착하면 내려서 바로 현금으로 이용료를 지불하는 베트남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베트남 정부는 '현금 없는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 오는 2025년까지 전체 결제 금액에서 현금 사용률을 8% 미만으로 낮추겠다고 공언했지만 여전히 베트남에선 현금으로 대부분의 결제가 이뤄지고 있었다.

사이공스퀘어 안에선 현금결제가 당연한 일이었다. 일부 매장은 아예 결제 단말기가 없었을뿐더러 현금이 없으면 물건을 아예 사지 못하는 매장도 있었다. 기자에게 신용카드를 받았던 한 베트남 상인은 3%의 추가 수수료 부담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랩 택시기사가 요금을 현금으로 받는 모습./사진=박슬기 기자


인구 절반만 은행 계좌 보유


9800만명에 달하는 베트남 전체 인구 가운데 은행 계좌를 보유한 사람은 50%에 그친다. 베트남 정부는 은행 계좌 보유율을 2030년 90%까지 높인다는 구상을 갖고 있지만 베트남인들은 여전히 현금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남편의 근무지가 베트남으로 바뀌면서 6개월 전부터 호찌민에서 거주해온 김 모(40) 씨는 "그랩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현금 대신 카드 결제를 할 수 있지만 현지인들이 카드를 많이 쓰다 보니 나 역시 카드 결제를 하는 게 꺼려진다"며 "한국에 있을 때보다 현금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인들의 현금 결제 선호 경향은 월급날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권용규 우리은행 호찌민지점장은 "직원들 월급을 계좌로 넣어줘도 대부분은 월급을 현금으로 인출해 금고에 넣는다"며 "여기선 금고를 큰 보물단지로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온라인상거래 플랫폼에서 구입한 상품 결제도 현금 거래로 이뤄진다. 길거리에선 한국의 쿠팡과 같은 이커머스 업체인 라자다 등에서 산 물건을 배송해주는 기사가 고객에게 전화를 걸면 구매자가 나와 물건을 받으면서 현금으로 상품 결제를 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베트남 호찌민 지역으로만 한정해 보면 은행 계좌 보유율은 80~90%에 이르지만 현금 거래 비중은 여전히 80%에 이른다. 이처럼 베트남의 현금 선호 현상이 뚜렷하다보니 2020년 기준으로 신용카드 보급률이 전 국민의 3%에 그친다.
베트남우리은행 호찌민지점 행원이 현지 애플리케이션(앱)을 소개하고 있다./사진=박슬기 기자


"티핑포인트만 지나면… 조기에 선점하라"


하지만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기점으로 베트남에선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전 세계적인 디지털금융의 발달에 따라 베트남 상업은행들은 디지털금융을 고도화하는 추세다. 상품과 서비스, 업무 프로세스, 비대면 채널 등 다양한 부문에서 디지털화가 각 은행의 핵심 전략으로 운용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e-Wallet(전자지갑) 시장의 성장과 함께 연계할 수 있는 은행 계좌에 대한 니즈도 증가하는 동시에 e-KYC(전자신원확인)가 시장에 도입되며 디지털 금융이 더욱 확대되고 있는 모습이다. 베트남 정부가 전자결제 시장 활성화에 적극적이어서 디지털 금융거래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현지 정부는 6월 16일을 '현금 없는 날'(No Cash Day)로 정하고 이날 현금 결제 대신 비현금(전자) 결제 수단을 사용하면 10만동 할인쿠폰을 주는 등 혜택을 부여해 현금 결제 비중을 낮추는 데 매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은행들도 디지털 금융에 공을 들이는 분위기다. 베트남의 전자결제 활성화는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닌 티핑포인트(임계점)가 오는 순간 빠른 시간 안에 결제방식의 대전환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는 셈이다.

현지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디지털뱅크로 도약하는 곳은 신한베트남은행이다. 신한베트남은행은 베트남에서 46개 영업점을 갖춰 네트워크 측면에서 외국계 은행 1위 자리를 굳히고 있지만 회사는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자가 현지 앱을 체험해보니 이미 한국에서 신한은행이 제공하는 앱 수준으로 기능이 올라온 상태였다. 신한베트남은행 앱에 로그인하니 모바일폰 충전, 전자지갑 충전 등의 기능이 전면에 배치돼 있었다. 엠프레스타워에서 만난 김종웅 신한베트남은행 디지털전략부 부장은 "베트남은 휴대전화 통신료를 교통카드 충전하듯이 유심에 돈을 충전해놓고 통신료가 빠지는 구조라 앱에 관련 기능을 탑재했다"며 "잘로, 모모 등 현지 핀테크 업체들과 협업을 넘어 신한베트남은행 앱 버전을 현재 2.0에서 올 10월 3.0으로 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이고 베트남인들이 선호하는 색상을 앱에 넣는 등 현지화한 기능을 추가해 디지털 채널을 통한 고객 유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사들은 현지는 물론 국내에서 전통적으로 현금을 선호하는 베트남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우리은행의 경우 현지에서 모바일 앱 활성화를 위해 한국으로 유학 온 베트남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관광공사 '웰컴키트' 안에 '비대면 유학생 생활비 송금 서비스' 설명서를 넣어 비대면 통장 개설을 권유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은행베트남의 펌뱅킹 거래 건수는 2020년 368만5579건에서 2021년 816만90건으로, 같은 기간 거래액은 18억7790만달러에서 43억844만달러로 급증했다.

김종갑 우리은행 호찌민지점 차장은 "지속해서 디지털 신규고객을 늘리기 위해 마케팅팀을 운영한 결과 2021년 펌뱅킹 거래규모가 전년대비 2배 이상 증가하고 있고 제공 서비스를 다양화하는 등 고객수요가 점차 늘고 있어 연내 관련 시스템 인프라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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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찌민(베트남)=박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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