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린 배터리도 다시 보자"..폐배터리에 손뻗는 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폐배터리 사업을 구체화하기 위해 전사적으로 나선다. 기아는 최근 독일의 국영 철도회사와 폐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었고, 현대차는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와 합작해 폐배터리 사업을 위해 TF(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기도 했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원자재 공급난 등을 계기로 배터리 확보가 미래 모빌리티 사업의 핵심이 된 만큼 '배터리 하나도 허투루 쓸 수 없는' 완성차업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13일 기아에 따르면 기아 유럽법인은 독일 국영 철도회사 도이치반(DB)의 에너지저장장치(ESS) 스타트업 '앙코르(Encore)'에 유럽에서 판매됐던 자사 전기차에서 수거한 폐배터리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DB는 독일은 물론 범유럽에서 사업 중인 독일 최대 규모 철도회사다. DB와 폐배터리 사업을 추진하는 완성차 업체는 기아가 최초다.
앙코르는 이미 DB의 인프라를 이용해 전 유럽에서 재활용·재사용을 위한 폐배터리 회수 서비스를 진행 중이다. 기아와 앙코르는 이미 지난달 독일 수도 베를린에 폐배터리를 활용한 ESS 시제품을 내놓고 운영 중이다.
이 시제품은 현지 기아 딜러들이 회수한 소울 EV의 배터리로 만들었는데, 용량은 총 72㎾h로 태양열로 스스로 발전하는 게 특징이다. 가동을 시작한 후 가장 먼저 전력이 쓰인 곳도 기아 니로EV 충전이었다.
재제조는 사용이 끝난 제품 또는 부품을 체계적으로 회수해 여러 단계를 거쳐 신제품과 동일한 성능을 갖도록 다시 상품화하는 걸 의미하고, 재사용은 해당 배터리를 그대로 다시 쓰는 것을 뜻한다.
배터리의 성능이 80~90%가량 남아있는 것으로 진단되면 재제조 과정을 거쳐 중고 전기차 등에 활용한다. 잔존성능이 60~70% 수준일 경우 ESS 등 충전 시설에 재사용한다. 현대차는 폐배터리 재활용을 통해 태양광 발전 등의 보조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60% 이하로 잔존성능이 떨어진 폐배터리는 니켈·코발트 등 원재료를 회수해 새 배터리로 다시 만드는 재활용 과정을 거친다.
폐배터리 수거와 운송은 현대글로비스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현대글로비스가 특허를 획득한 배터리 운송 플랫폼 컨테이너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해당 용기는 여러 층으로 배터리를 담아 한꺼번에 운송할 수 있게 제작돼 효율성과 안전성을 높인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차 관계자는 "앞으로 현대차의 폐배터리 재사용 ESS 실증사업은 글로비스로 이관될 예정"이라며 "회수부터 재사용까지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본격 폐배터리 재사용 사업체제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했다.
완성차 업체가 폐배터리 사업에 직접 뛰어드는 건 전기차 생산 단가를 낮추는 동시에 최근 인플레이션 방지법(IRA)을 앞세운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에도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 가격의 절반 이상은 배터리값일 정도로 싼값에 전기차를 많이 팔아야 하는 완성차 업체 입장에선 저렴하고 품질이 좋은 배터리를 최대한 많이 확보해둬야 한다. 중국산 의존도가 높은 배터리 원자재 사용을 막는 IRA를 우회하기 위해서라도 기존 배터리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이종형 키움증권 연구원은 "미국은 IRA를 통해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 한다"며 "배터리 핵심 소재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 생산 비중을 높이는 대안으로서 폐배터리 재활용이 부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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