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20cm 두툼한 뻘밭, 포항제철소 압연공장.."논바닥 같아"

안태호 2022. 9. 14.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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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침수 피해 포항제철소
만조시간 겹쳐 바닷물 밀려와
전기 끊겨 배수작업 속도 못 내
멈춰 선 고로 가동 시작했지만
압연공정 안 돌아가면 생산 차질
"완전복구까지 상당한 시일 예상"
제11호 태풍 힌남노로 밀려든 흙탕물이 경북 포항시 남구 포스코 포항제철소 내 압연공정으로 쏟아지고 있다. 독자 제공

13일 찾은 포항제철소 인근 도로들은 복구 작업으로 분주했다. 여름 내내 더위를 식히려 분주히 돌아다녔을 살수차는 도로에 쌓인 뻘을 제거하느라 바빴고, 덤프트럭과 굴삭기는 가로수 옆 쓸려나간 모래를 채워넣고 있었다. 제철소 출입구 인근 표지판은 뽑혀 나뒹굴고 있고, 제철소와 도로의 경계를 가르는 철조망은 구겨진 상태로 누워 있다.

“압연공장은 지금 온통 뻘밭입니다. 20㎝ 정도 쌓인 뻘 위로 물이 찰박거려서 마치 논바닥 같아요. 우선 사람이 다닐 통로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포항 남구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 사무실에서 만난 정인석씨는 “공장에 들어섰는데 흙탕물밖에 안 보이니까 ‘와 끝났다’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처음 겪은 일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정씨는 30년 넘게 포스코 하청업체 소속으로 일해온 노동자로, 지금은 압연공정에 공급하는 ‘롤’을 만드는 일을 한다. 지난 6일 태풍 힌남노로 포항제철소가 물에 잠겨 가동 중단에 들어간 이후에는 줄곧 복구 작업에 투입됐다. “롤을 가공하는 키 높이의 ‘연마기’가 모두 잠겼다. 시간이 흐르자 뻘이 바닥과 설비에 쌓였다. 만조 시기가 겹친 탓에 뻘이 섞인 바닷물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경북 포항시 남구 포스코 포항제철소 내 압연공정에서 작업자들이 장비에 쌓인 뻘을 제거하고 있다. 독자 제공

쇳물을 만드는 고로는 순차적으로 재가동되고 있다. 하지만 압연공정 쪽은 아직 전력 복구조차 안된 상태다. 밤에는 작업이 어렵고, 기름을 넣어 사용하는 작은 펌프를 쓴다. 과열 문제 때문에 2시간 쓰고 30분을 쉰다. 배수 작업이 더딘 이유다. 정씨는 “제철소를 다시 지어야 한다는 기사까지 나왔는데 그건 너무 나갔다. 다만, 대부분의 설비를 교체할 필요가 있어 완전복구하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찾은 제철소 정문 쪽은 깔끔하게 복구된 상태였다. 지난 6일 하천을 방물케 할 정도로 침수됐던 포항제철소 앞 왕복 4차선 도로도 지금은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제철소 내부로는 진입할 수 없었다. 정문을 지나 2문·3문 쪽으로 이동하자, 넘어진 표지판과 휘어진 가로수, 제철소와 도로를 가르는 경계 철조망에 달라붙은 부유물 등 태풍 ‘힌남노’가 할퀴고 간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제철소 앞 큰 도로를 따라 이동하면 1문→정문→2문→3문 순으로 이어지는데, 3문 옆 냉천에서 불어난 물이 제철소를 덮친 터라 그 쪽 피해가 컸다.

13일 경북 포항시 남구 포스코 3문 앞 표지판이 뽑혀 있다. 지난 6일 태풍 힌남노가 몰고 온 기록적인 폭우의 흔적으로 보인다.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침수·정전돼 가동이 중단됐던 포항제철소의 모든 고로는 13일 정상 가동 체제에 돌입했다.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지난 12일 경북 포항시 남구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직원들이 태풍 힌남노로 입은 침수 피해를 복구하며 배수 펌프를 작동시키고 있다. 포스코 제공

냉천과 접해 있는 압연공정 쪽의 피해도 컸다. 압연공정은 고로에서 나온 쇳물을 굳혀 만드는 반제품 ‘슬래브’를 얇게 펴 고객이 원하는 제품의 두께로 만드는 후공정이다. 제철소 노동자들은 “압연공정을 제어하는 설비가 모두 지하에 있어 특히 피해가 컸다”고 전했다. 침수 이후 모두 멈춰섰던 고로가 12일부터 순차적으로 재가동되고 있지만, 압연공정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생산된 쇳물이 철강 제품 생산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중간재 성격의 슬래브 형태로 만들어 쌓아둘 수밖에 없다.

포스코는 다양한 대안을 찾고 있다. 슬래브를 광양제철소로 보내거나 광양제철소의 압연설비를 뜯어 포항제철소로 이전하는 방안 등까지 검토 중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육로나 해상 운송을 통해 슬래브를 옮겨야 하는데, 물류비가 설비 이전 비용보다 비싸면 설비 이전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전기차 생산량 증가로 수요가 늘고 있는 전기강판 공급망도 문제다. 광양제철소에는 전기강판 생산설비가 없다. 현재 1·2·3공장 가운데 3공장만 가동 가능해 생산 능력이 크게 줄었다.

지난 12일 경북 포항시 남구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직원들이 태풍 힌남노 때 밀려들어온 진흙을 퍼내고 있다. 포스코 제공

이로 인해 포스코에서 철강원료 또는 철강제품을 수급해야 하는 고객사들의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공급량 감소에 따른 철강제품 가격 상승도 예상된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소재산업환경실장은 “국내 대체 생산, 수입, 유통상의 재고 여부 등이 관건이다. 봉형강 등은 유통사에 재고가 많고 수입도 용이하지만, 전기강판·스테인리스 등은 생산 차질이 장기화되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며 “철강 가격도 전반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번 포항 침수의 주범으로 지목된 냉천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포항시가 하천 정비작업을 하며, 하류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게 만들어 이번 침수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포항제철소 3문과 연결된 냉천교를 기준 삼아 상류 쪽 하천 폭은 약 160m였으나 하류 쪽은 60∼70m로 좁아졌다.

한편, 포항시는 포항제철소 침수로 인한 피해규모를 1조2천억원으로 밝혔다. 현장에서 만난 포스코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아직 정확한 피해규모를 산정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포항/글·사진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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