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4일, 무려 3명의 배우가 하늘로..(과거사 재조명) [Oh!타임머신]

박소영 2022. 9. 14.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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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4일, 하늘은 연예계에 유난히 매정했다.

대중의 사랑을 받은 배우 셋을 나란히 데려간 이유에서다.

노출로 떴지만 누구보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컸던 배우 오인혜.

배우 패트릭 스웨이지는 영화 '더티 댄싱'과 '사랑과 영혼'으로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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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사진팀] 故 배우 오인혜 씨의 빈소가 15일 인천 중구 신흥동 인하대학교부속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인천 연수경찰서 관계자에 따르면, 오인혜는 15일 새벽 5시께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자택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이후 오인혜는 호흡과 맥박을 회복했다고 알려졌으나, 끝내 심정지로 감은 눈을 뜨지 못했다. 발인은 오는 16일이다./photo@osen.co.kr<사진=사진공동취재단>

[OSEN=박소영 기자] 9월 14일, 하늘은 연예계에 유난히 매정했다. 대중의 사랑을 받은 배우 셋을 나란히 데려간 이유에서다. 할리우드와 대한민국이 슬픔에 빠졌던 그날로 오쎈 타임머신을 타고 떠나보자.

#2020년 9월 14일

노출로 떴지만 누구보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컸던 배우 오인혜. 2년 전 스스로 생을 마감한 그의 이름을 여전히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다.

오인혜는 2020년 9월 14일 오전, 인천의 자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심정지 상태로 발견횐 후 잠시 맥박과 호흡을 회복하는 듯 보였지만 끝내 감은 눈을 뜨지 못했다. 향년 37세. 

사망 이틀 전까지만 해도 팬들에게 일상을 공개했던 오인혜다. 그의 인스타그램 마지막 피드는 그해 9월 12일에 올린 “오랜만에 주말 서울 데이트. 출바알~ 모두 굿주말”이라는 메시지다.

사실 오인혜는 생전 온라인을 발칵 뒤집어놓은 바 있다. 지난 2011년 故박철수 감독의 영화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으로 스크린에 데뷔했을 당시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서 파격 노출 드레스로 과감한 매력을 뽐냈기 때문.

노출로 떴지만 그 꼬리표를 떼기 위해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다. 웹예능 '오인혜의 쉿크릿' 등 여러 포맷에서 팬들을 만났고 유튜브 ‘오~인혜로운 생활!’까지 2019년 7월에 오픈해 활발하게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삶의 무게가 너무 컸던 걸까. 오인혜는 스스로 세상과 작별을 택했고 너무 빨리 진 아름다운 꽃을 향해 여전히 그리움이 쏟아지고 있다. 

#2009년 9월 14일

배우 패트릭 스웨이지는 영화 ‘더티 댄싱’과 ‘사랑과 영혼’으로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안무가 패치 스웨이지의 아들인 터라 ‘더티 댄싱’에서 보여준 그의 춤사위는 로맨스 매력을 배가하기 충분했고 ‘사랑과 영혼’ 속 헌신적인 순애보는 전 세계를 울렸다.

이어 '폭풍 속으로', '시티 오브 조이', '도니 다코' 등을 통해 때로는 남성적 매력과 때로는 우수에 젖은 눈빛을 선보이며 여심을 흔들었다. 2003년에는 자신의 출세작인 '더티 댄싱'의 속편, '더티 댄싱 2'의 제작과 출연을 도맡으며 건재를 과시했다.

그러나 2008년 췌장암 판정을 받은 후 급격히 건강이 악화됐다. 그럼에도 암 말기 때 불굴의 연기 투혼을 발휘했고 TV 드라마 '비스트’를 완성했다. 장장 5개월 간의 촬영을 해냈는데 연기를 위해 진통제 투약까지 거부했다고 알려져 뭉클함을 더했다.

"암은 치유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런 철칙을 반드시 깨고 말겠다"며 암과의 싸움에 지지않겠다고 다짐했던 패트릭 스웨이지다. 비록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삶과 연기에 대한 열정은 아직도 많은 이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사진]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982년 9월 14일

할리우드와 모나코 왕실을 모두 가진 단 한 명의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영면에 든 날이다. 1929년생인 그레이스 켈리는 1951년 영화 ’14시간’으로 데뷔해 1954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하는 할리우드 최고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1955년 모나코 왕실 행사에 초청받았다가 자신의 팬이던 레니에 3세와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르게 됐다. 26살에 은퇴해 1956년 할리우드 배우 최초로 왕비가 된 그는 1957년 캐롤라인, 이듬해 알베르 2세, 1965년 막내 스테파니 등 삼남매를 낳았다.

하지만 왕족이 된 그레이스 켈리의 삶은 너무 짧았다. 1982년 9월 13일 운전 도중 갑작스러운 발작으로 교통사고를 당했고 다음 날 세상을 떠나고 만 것. 차에 같이 타고 있던 스테파니 공주는 살아남았지만 모나코는 왕비를 잃고 말았다.

/comet568@osen.co.kr

[사진] OSEN DB, 게티 이미지 제공, 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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