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암흑기 넘어선 이정재
성기훈. 1974년생. 대한공고 졸업 후 드래곤모터스 조립1팀에서 일하다 구조조정으로 실직, 치킨집·분식점을 하다 망해 대리 기사로 일하지만 도박 빚에 허덕임. ‘오징어 게임’ 456번 참가자 성기훈 역의 배우가 이정재(50)다. 이정재가 에미상 드라마 시리즈 부문 남우주연상을 탔다. 2020년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그랬듯, 올해는 ‘오징어게임’이 에미상 역사를 새로 썼다.
▶연기자를 두고 “딕션이 좋다”는 말은 발음을 넘어 대사 전달력이 좋다는 뜻이다. 한석규, 설경구, 조승우 같은 배우가 그렇다. 용모가 출중한 배우 대다수는 ‘연기력 논란’을 통과의례처럼 겪는다. 이정재는 고교 졸업 후 압구정 카페에서 서빙을 하다 디자이너 하용수에게 모델로 스카우트됐다. 그가 전국구 스타가 된 건 드라마 ‘모래시계(1995)’ 때였다. 멋진 양복을 입었지만 말수는 매우 적은 보디가드 백재희 역이었다.
▶1998년 영화 ‘정사’, 이듬해 ‘태양은 없다’ 이후 뚜렷한 히트작이 없던 이정재는 2010년 영화 ‘하녀’에서 재벌 2세로 나와 호평을 받았다. 작품과 배역 고르는 눈이 확실히 좋아졌다. 공짜로 생긴 건 아니었다. ‘이정재의 암흑기’라고 불리는 기간 그는 무던히 노력했다. 대학교수에게 연기 과외를 받고, 역사, 스릴러, 코미디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영화계에 “정재가 잘돼야 하는데”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외신이 쓰는 ‘이정재 흥미로운 점(fun fact)’ 기사에는 주로 두 가지가 들어간다. “이정재의 여자 친구는 재벌가 딸(chaebol daughter), 삼성 후계자 전 부인”이 첫째다. 둘째는 ‘셀피(자기 사진)’ 이야기다. 그가 지난해 말 인스타그램 계정을 열고 휴대폰으로 찍은 셀카 사진과 글을 올렸다. “이렇게 올리면 되나요?” SNS 사진에 영혼을 담는 세대가 보기엔 허술했다. ”그렇게 찍을 거면 그 얼굴 저 주세요.” “셀카 압수하자.” “외모 낭비.” 젊은 대중이 그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신호였다.
▶연기자로 상을 받았지만 그에겐 직업이 더 있다. 연예 매니지먼트사 설립자 겸 영화감독이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헌트’는 데뷔작인데 평이 좋다. “’오징어 게임’의 주연이 아니라 ‘헌트’의 감독으로 기억되어야 한다”는 다소 과장된 찬사도 나온다. 이정재와 남우주연상을 두고 경쟁한 밥 오든커크(베터 콜 사울), 제이슨 베이트먼(오자크)은 물론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도 배우 겸 제작자다. 이제 그 트랙에 들어선 이정재가 또 우리를 놀라게 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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