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회의 행로난] 원숭이와 민둥산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2022. 9. 1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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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안석은 북송 시대 신법이라 불리는 개혁안으로 이름이 높았던 이다. 그는 초임은 지방관으로 임용하는 관례에 따라 지방에서 관리 생활을 시작하였다. 몇 년 후 황제는 그를 조정으로 불렀다. 하지만 그는 지방 실정을 더 파악하고자 중앙으로의 진출을 마다했다. 그의 혁신이 처음에는 기득권층의 거센 저항에 좌초되었지만, 시일이 흐른 후 적잖이 채택된 것은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자 한 이러한 노력 덕분이었다. 그를 훌륭한 정치가로 평가할 수 있는 이유다.

정치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시가와 산문에서도 대가 반열에 올랐던 인물이다. 특히 사회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한 시는 일품이라 칭할 만했다.

“원숭이가 서로 짝지어 새끼를 낳고/ 그렇게 자손이 늘자 산은 비좁아졌지요./ 산에는 초목이 무성했고/ 뿌리와 열매 풍성했지만/…/ 뭇 원숭이 죄다 배부르고 살찌자/ 산은 이내 민둥산이 됩디다./ 서로 밀치고 다투어야 한번 배부를 수 있으니/ 거둬들여 저장할 일, 도모할 겨를이나 있었겠습니까.” <민둥산(禿山)>

한번은 왕안석이 임지로 가는 길에 바다를 건너게 됐다. 그런데 멀리 한 섬의 민둥산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른 섬의 산은 우거졌는데 그 산만 민둥산이었던지라 그 까닭을 물었다. 이에 마을사람들이 그 사정을 말해주었다. 이 시에서 산과 원숭이는 각각 중국과 통치계층을 가리킨다. 통치계층이 미래를 대비하지 않은 채 당장의 욕망에 매몰되어 산의 자원을 마구 착취했고, 그 결과 다른 산과 달리 민둥산이 되어버렸다. 곧 중국이 몰지각한 통치계층 탓에 황폐해졌다는 얘기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원숭이는 꾀 많은 존재의 비유로 줄곧 활용된다. 하여 이렇게 대책 없이 욕망을 충족하다간 머지않아 자원이 고갈되리라는 것 정도는 익히 알았을 법하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혹 그렇게 미래를 내다보며 현실을 제어할 수 있는 원숭이가 당장의 욕망에 눈먼 원숭이들의 등쌀 탓에 배제되어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된 결과가 아닐까?

물론 위 시의 내용만으로는 정말 그러했는지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우리 주변에 그와 같은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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