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가격 급등에 '애그테크'로 투자 몰린다
농업 데이터 플랫폼 앱 ‘팜모닝’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그린랩스’는 이달 초 국내 최초로 세계경제포럼(WEF)의 ‘글로벌 이노베이터’에 선정됐다. 다보스포럼이라고 불리는 WEF는 매년 우수 기술을 바탕으로 고속 성장하는 스타트업을 글로벌 이노베이터로 선정한다. 이 회사의 팜모닝은 각종 농작법 자료, 부문별 정부 보조금 규모, 농산물 경매 시세와 같은 각종 영농 정보를 모아 제공하는 서비스다. 누적 이용자가 70만명 이상이며, 올 초 기업 가치를 8000억원으로 평가받은 차세대 유니콘이다. ‘농민의 구글’ 혹은 ‘농축수산계의 삼성’이 되는 것이 그린랩스의 목표다.
코로나 사태에 기후변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며 식량 위기가 현실로 다가오자 ‘애그테크’가 급부상하고 있다. 애그테크는 농업(agricultur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드론·로봇 등 첨단 기술을 농작물의 생산과 유통 전 과정에 적용하는 것을 뜻한다. 애그테크에 유입된 전 세계 벤처투자금이 2019년 221억달러(약 30조4000억원)에서 2년 만에 두 배가 넘는 517억달러로 늘었다. 국내 애그테크에서는 스마트팜뿐만 아니라 영농과 유통 데이터를 활용하거나 기존의 농기구에 자율주행 등 첨단 기술을 접목시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식량난 위기에 ‘애그테크’ 주목
지난달 26일 국내 애그테크 스타트업인 트릿지는 50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를 하면서 무려 3조6000억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농산물 무역 플랫폼을 운영하는 트릿지는 농산물 15만종의 가격과 품질, 무역 데이터를 담은 농산물 데이터와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지 농장 실사를 비롯해 공급자 이력 검증, 계약 협상, 세관과 무역 업무를 대행하는 것이다. 델몬트, 월마트, 까르푸 등 식품·유통 대기업뿐 아니라 호주 농림부, 싱가포르 식품청과 같은 해외 기관도 주요 고객이다.
스마트팜 스타트업 엔씽은 올 초 세계 최대 정보기술(IT)·전자박람회인 CES에서 모듈형 컨테이너 수직농장을 선보여 혁신상을 받았다. 엔씽의 기존 스마트팜도 외부 오염 물질을 차단하고 내부 공기 질을 상시 관리하는 클린룸 시스템을 접목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마트, KT와 같은 대기업들이 엔씽과 협력해 스마트팜을 운영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농식품 분야 스타트업 투자에 대한 관심은 미미했는데 식량 위기에 대한 불안이 높아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애그테크 분야 유니콘까지 나오면서 투자자와 대기업도 관심을 갖게 됐다. 스무군데가 넘는 애그테크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한 소풍벤처스의 한상엽 대표는 “최근 들어 농식품 분야 대기업의 신사업팀, 투자팀 담당자들로부터 농식품 관련 투자 전망이나 투자할 만한 곳에 관한 문의를 많이 받고 있다”고 했다.
SK스퀘어는 지난해 말 그린랩스에 350억원을 투자했고, 이수그룹이 사내벤처로 육성한 팜스태프는 스마트팜 데이터를 가공, 분석해 식품 기업 구매 담당자들이 농수산물을 안정적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한다.
◇美·유럽보다 亞서 성장 가능성
농장비 업계도 자율주행이나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대표적으로 국내 농기계 1위 업체인 대동은 올 초 현대오토에버와 손잡고 대동애그테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농기계·농업기술, 토지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디지털화하고 농기계 자율주행 기능도 연구하고 있다. 농기계 2위 업체인 TYM도 정밀농업 자회사인 TYMICT를 통해 스마트폰으로 트랙터를 실시간으로 원격 제어할 수 있는 서비스를 론칭했다. 완전자율주행과 농기계 군집 주행(두 대 이상의 차량을 하나의 체계로 묶어 동일한 간격으로 주행하는 것) 기술도 개발하고 있는 이 회사의 별명은 ‘농슬라’(농기구+테슬라)다.
농수산 업계에서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스마트팜과 농수산물 유통과 관련된 애그테크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더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애그테크에 투자한 사모펀드 관계자는 “미국은 영농 규모가 큰 기업형 농장이 많지만 한국, 동남아시아, 인도는 영세 농가가 많은 데다 도매 시장이 아직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어 개선의 여지가 크다”고 했다. 이 점을 노려 그린랩스는 최근 일본, 베트남, 인도에, 엔씽은 중동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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