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두 여성에 들썩인 영국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2022. 9. 1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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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영국은 두 여성에 대한 뉴스로 가득했다.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래 왕좌를 지킨 엘리자베스 2세의 죽음과 영국의 첫 40대 여성 총리인 리즈 트러스의 등장은 전 영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오랜 재위기간 동안 정치적 권한이 없는 한계 속에서도 영향력과 존재감을 뽐냈다. 영국뿐 아니라 전 영연방 국가의 ‘정신적 지주’ 노릇을 함과 동시에 대중과 가까이하며 ‘유명인사’로서의 역할을 해냈다. 여왕은 재위기간 중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와의 관계 강화에 힘쓰고 정치적 개입을 자제한 채, 왕가가 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이어왔다.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현재 다수의 영국인들은 여왕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지만 새로 취임한 찰스 3세에 대해서는 기대감보다 우려를 많이 내비치고 있다. 영국 왕실과 영연방 통합의 상징이었던 엘리자베스 2세의 빈자리를 사생활 문제, 국정개입 논란 등이 있었던 찰스 3세가 채울 수 있을지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그리고 여왕이라는 구심점이 사라진 왕실의 권위가 더 약화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특히 최근 나타난 영연방 국가들의 군주제 비판과 탈퇴 움직임은 군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보리스 존슨 전 총리에 이어 신임 총리가 된 리즈 트러스는 마거릿 대처, 테리사 메이에 이어 등장한 영국의 세번째 여성 총리다. 트러스는 엘리자베스 2세 서거 이틀 전 총리에 임명됨에 따라 여왕이 마지막으로 임명한 총리로 기록에 남게 되었다. 트러스는 대학 시절 군주제 폐지를 주장한 전력이 있다. 그녀는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에 가까운 부모 아래서 자랐으나 대학 졸업 후 보수당에 입당하며 정계에 진출했다. 트러스는 이념뿐 아니라 정책에 대한 태도 역시 필요에 따라 자주 바꾸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녀는 브렉시트 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내세웠다가 지지로 돌아서 브렉시트 이후 무역협상을 이끈 국제통상장관 역할을 맡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트러스에게는 ‘변신의 귀재’ ‘카멜레온’ ‘야심가’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트러스 총리는 고물가와 에너지 위기 등으로 임기 초부터 위기를 마주했다. 현재 영국은 7월 기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1%나 되고 가계 에너지비가 평균 연 3600파운드(약 550만원)에 달하는 등 민생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으로 인해 올 10월부터 영국 가계의 에너지 요금은 약 80%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러스 총리는 이 위기에 맞서 경제 불평등 해소보다 성장에 초점을 맞춘 경제 정책을 펼칠 것이라 예고했다. 이미 법인세율 인상 철회, 환경부담금 면제 등 강도 높은 감세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하지만 감세 정책으로 인한 경기 부양은 인플레이션에 악영향을 주고, 국가재정을 악화시킬 수 있어 트러스 총리의 정책 방향에 대해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영국이 맞은 위기의 시대, 한 여성은 역사의 뒤편으로 퇴장했고, 다른 여성은 등장했다. 여왕의 부재를 채워야 하는 영국 왕실과 에너지 위기,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무너진 민생 경제를 회복해야 하는 트러스 내각 모두 이 고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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