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외교까지 정쟁 도구로 삼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7일 페이스북에서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이 낸시 펠로시 미 연방 하원의장을 만나지 않은 것이 국내 전기차 기업의 피해를 초래했다는 주장을 폈다. 미 블룸버그 통신의 보도를 인용한 어느 국내 인터넷 언론 기사를 근거로 들었다. 기사에서 소식통은 이른바 ‘펠로시 패싱’이 “치명적 실수”라며 “만약 두 사람이 만났다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미 의회 통과 이전에 변화를 모색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펠로시 패싱’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비판받았고, IRA 통과 후에야 너도나도 미국으로 달려가고 있는 외교 당국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절차적 하자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IRA 통과는 급작스러웠다. 우리만 아니라 유럽연합(EU)과 일본 등도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의 변화무쌍한 정치에 뒤통수를 맞았다. 그런데도 대선 후보를 지낸 제1야당 대표가 ‘펠로시 패싱→한국산 전기차 차별’이라는 단순한 도식으로 외교 라인 문책까지 요구한 것은 씁쓸한 대목이다. 대선 전인 올해 1월 기자가 이 대표에게 ‘당선되면 바이든과 시진핑 중 누굴 먼저 만날 것이냐’고 물었을 때 “외교는 (단순하게) ‘예스 오어 노(yes or no)’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던 대답을 잊었나.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의 나토(NATO) 정상회의 참석에 대해서도 “안 가도 될 회의”라면서 “중국·러시아를 자극했다”고 했다. 그러나 전(前) 정부 외교·안보 핵심이었던 최종건 전 차관은 “이재명 대통령이 계셨다고 해도 갔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도 탈세계화와 자유·민주 진영 중심의 재블록화라는 국제정치의 거대한 흐름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 대표는 대선 전 “6개월 초보 정치인이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났다”고 피해국을 비난한 세계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건 아닌가.
산업화와 민주화 다음 선진화를 주창한 고(故) 박세일(1948~2017) 교수는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내치(內治)는 어느 한쪽이 과도하면 견제, 조정할 수 있는 사회적 힘들이 있다. 그런데 외교는 우리가 잘못하면 다른 나라들이 그걸 이용하면서 자기 이익을 극대화한다.” 내치와는 차원이 다른 외교 문제의 섣부른 정쟁화를 경계한 것이다. 임진왜란·병자호란처럼 외교 문제를 정쟁 도구로 삼았을 때 비극을 초래한 사례는 많다.
이 대표의 대선 캠프에는 교수와 전직 대사 등 외교 전문가들이 많았고, 그중에는 실력을 인정받는 이들도 상당수였다. 외교 문제는 섣부르게 정쟁화하기보다는 유능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미·중 경쟁 시대 우리 외교가 가야 할 더 바람직한 방향을 갖고 있다면 말이다. 이 대표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게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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