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79] 왕이 없는 왕좌의 게임

김규나 소설가 2022. 9. 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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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왕좌를 본 적이 있나? 등을 따라 가시가 돋아 있고, 비틀린 강철 리본에, 들쭉날쭉한 장검과 단검 끝이 뒤엉켜 녹아 있는 그 의자를? 그건 편안한 의자가 아니라네. 아에리스는 어찌나 자주 베이는지 사람들이 피딱지 왕이라고 부를 정도였고, 잔혹 왕 마에고르는 그 의자에서 살해당했지. 그건 사람이 편하게 쉴 수 있는 의자가 아니야. 왜 내 형제들이 그 의자를 그토록 간절히 원했을까 의아할 때도 많지. - 조지 R.R. 마틴 ‘얼음과 불의 노래’ 중에서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했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왕이었지만 그는 지난 70년간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를 포함한 넓은 영연방 왕국의 군주였다. 왕실 존폐 논란과 왕가의 다양한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세간의 사랑과 존경을 받은 왕이기도 했다. 그의 사후 왕관은 장남인 찰스 3세에게 승계되었다.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원작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는 왕권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을 그린다. 사람은 갖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싸운다. 원하는 것을 쉽게 얻고, 가진 것을 굳건히 지킬 수 있는 힘이 권력이다. 그 힘이 클수록 승계 다툼에 따르는 음모와 배신, 왕위 쟁탈을 향한 합종연횡, 권력 찬탈에서 일어나는 피바람은 한시도 멈추지 않는다.

평등과 민주가 가장 강력한 이념이 된 지금, 권력을 행사하는 왕은 대부분 사라졌다. 기업의 승계, 일반인의 재산 상속조차 어려운 세상이다. 선거로 4년, 5년마다 정치권력의 중심이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매일 쏟아지는 정치 뉴스는 내 죄가 크냐, 네 죄가 크냐, 말싸움만으로 시끄럽다. 옳고 그름, 죄와 벌은 애초에 논쟁 대상이 아니다. 소란이 지나고 보면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앞에서 뒤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빙글빙글 돌려 앉았을 뿐, 자리를 잃은 사람은 거의 없다.

현대의 권력은 단 하나의 철왕좌를 고집하지 않는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노조와 시민 단체, 민주화 유공자 등 다양한 이름의 왕들이 저마다 군림하고 통치하고 세습한다. 시민이 받들어야 할 왕의 수만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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