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개정 교육과정, 백년대계의 사회적 합의 '의미있는 실험'
2022 교육과정 개정이 막바지 단계에 이르고 있다. 이번 교육과정 개정에서는 그동안 없었던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 우선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 개정’을 표방하면서 시작 단계부터 현장교원과 학생·학부모, 시·도 교육청 관계자 등 교육공동체 구성원과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자 노력했다.
특히 지난달 말부터는 현재까지 정리된 총론과 각론의 시안을 ‘국민 참여 소통 누리집’에 올리고 이에 대한 의견을 듣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교육과정 개정에서 처음 도입한 혁신적 변화이다.
이번 개정 교육과정은 “교육정책이 사회적 합의에 기반하여 안정적이고 일관되게 추진되도록 함으로써 교육의 자주성·전문성 및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고 교육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치하는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의 심의와 의결을 거치는 첫 번째 교육과정이기도 하다. 현재 그 구성과 관련하여 일부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기는 하지만, 교육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게 될 국교위는 그동안 일관성을 갖지 못했다고 비판을 받아온 국가교육과정이나 중장기 교육 정책이 안정성과 일관성을 갖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낙관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미 총론이나 일부 교과의 교육과정 시안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적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총론에서 강조하는 인간상과 역량이 중요한 가치를 충실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제기와 함께 새로운 교과목의 개설이나 시수 조정의 필요성, 교과 내 하위 영역 사이의 균형 문제, 그리고 교과별 학습내용의 난이도 수준의 적정성도 자주 거론되는 쟁점이다. 누군가가 ‘묘지 옮기기’에 비유한 교육과정 개정은 일면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정치적 이념이 갈등하는 정치적인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과정 개정이 미래사회를 살아가야 할 우리 학생들을 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는 데 제 역할을 다하려면 집단의 이해와 관계를 우선하기보다 교육적 가치를 먼저 고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번 교육과정 개정에서는 서로 다른 의견 사이에서 바람직한 판단을 내리기 위한 교육적 기준으로 몇 가지 원칙을 정리하였다.
첫째, 학습자의 삶과 성장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면서, 둘째,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역량과 소양을 함양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셋째, 지역과 학교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책임교육을 구현하며, 넷째, 디지털 인공지능 교육환경에 맞는 교수학습 및 평가체제를 모색한다. 이들 원칙이 모든 의견 차이를 조율해주기는 어렵지만, 교육의 발전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교육과정에서 강조한 개정의 방향을 보면, 자신의 삶을 책임 있게 이끌어 가는 주도성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대응 능력, 그리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협력하는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데 힘쓸 것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언어·수리·디지털 소양을 기초소양으로 책임 있게 길러 줌으로써 학습 격차를 줄이고 평생학습 능력을 갖추도록 하였다.
자신의 삶과 진로에 적합한 학습을 지원하는 맞춤형 교육과정 체제를 강조하였고, 교과 교육에서는 피상적인 학습을 넘어 깊이 있는 학습이 가능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호기심을 갖고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하여야 함을 강조하고 평가는 서열을 확인하는 것보다 부족한 부분을 확인하여 그것을 채워줄 수 있도록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번 총론 시안 개발에서는 총론 문서가 읽기 쉬우며 수업의 개선에 직접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서술 방식을 개선하고 목차를 조정하기도 하였다.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 개정은 여러 의견을 수렴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서로의 생각과 관점의 차이를 확인시켜주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이러한 상호 학습의 과정을 통해 상대방의 생각을 존중하면서 나의 생각이 갖는 제한점을 성찰하게 되고 학습자의 올바른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교육의 방향을 함께 모색해갈 수 있었다. 새로 구성될 국교위 역시 오직 학생들만 바라본다면 위원회 설립의 취지를 바르게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황규호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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