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의 아포리아]자유세계를 위협하는 테러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2. 9. 14.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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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 교수

[편집자주] 아포리아는 그리스어의 부정 접두사 아(α)와 길을 뜻하는 포리아(ποροσ)가 합쳐져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 또는 증거와 반증이 동시에 존재하여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 난제를 뜻하는 용어. '김남국의 아포리아'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지구적 맥락과 역사적 흐름을 고려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대안을 모색한다.

소설가 살만 루슈디가 지난 8월 뉴욕의 강연현장에서 흉기로 습격을 당했다. 루슈디는 그의 소설 '한밤의 아이들'로 세 번에 걸쳐 부커상을 받은 작가다. 1981년 이 소설로 부커상을 받은 후 1993년 부커상 25주년을 기념해 기존 수상작 가운데 선정한 특별상(Booker of Bookers)을 받았고 2008년 부커상 40주년을 맞아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으로 뽑혀 한 번 더 특별상(Best of the Booker)을 받았다. 물론 그는 '한밤의 아이들'보다 이슬람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이란의 통치자 호메이니로부터 사형을 언도받은 1988년 작 '악마의 시'로 더 유명하다.

'악마의 시'라는 책 제목은 신성한 코란의 문구들이 자신만이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들의 해석을 거쳐 악마의 시로 변질된다는 풍자를 담았다. 영국 무슬림들은 '악마의 시'가 예언자 무함마드를 가짜 예언자를 뜻하는 마훈드로 부르고 예언자 부인들의 이름을 사창가의 여자이름으로 사용하며 성지 메카를 어둠을 뜻하는 자힐라로 묘사하는 등 문학의 이름을 빌려 이슬람의 신성함을 모욕했다고 주장하며 판매금지와 신성모독에 의한 처벌을 요구했다.

사태 초기 종교적 신념의 보호를 지지하며 무슬림에 우호적이던 영국 여론은 1989년 1월 런던 북부 브래드퍼드에서 무슬림들이 사회적 이목을 끌기 위해 '악마의 시'를 불태우는 시위를 벌이면서 바뀌었다. 나치가 책을 불태우며 유럽문명을 파괴한 장면을 연상케 한 이 시위를 계기로 논쟁의 초점이 표현의 자유로 급속히 이동한 것이다. 무슬림의 신성모독에 의한 처벌 주장 역시 이슬람과 같은 이교도를 박해하며 유럽사회를 지탱한 중세의 법에 기대어 자신들의 권리를 확보하려는 역설적 시도로 여겨 공감을 얻지 못했다.

루슈디는 1993년 인터뷰에서 미국 수정헌법 1조가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동시에 보호하고 있음을 예로 들어 종교적 언어가 특별한 지위를 가져서는 안 되며 그럴 경우 특정 종교 추종자들은 자신의 믿음을 지킬 자유와 다른 사람이 자신의 믿음에 동의하지 않는 것을 방해할 자유까지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무슬림 작가 샤비르 아크타는 무슬림에게 고통을 안겨준 '악마의 시'를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하는 것에 반대하면서도 루슈디 살해명령에 찬성하지 않았는데 이는 루슈디를 자유주의의 순교자로 만들어줄 뿐이라는 이유에서였다.

2003년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열린 로열셰익스피어극단의 '한밤의 아이들' 연극공연과 이어진 강연에서 루슈디는 표현의 자유의 본질에 대해 불쾌하고 모욕적인 비판을 할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다면 표현의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는 종교 근본주의자들과 9·11테러 직후 시민들의 자유를 제약한 부시행정부를 향해 거침없는 공격을 퍼부었고 청중은 환호했다. 2007년 영국 정부는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려 기사 작위를 수여함으로써 그가 자유주의의 대표 전사임을 다시 확인해줬다.

박해받는 작가와 언론인을 미국에 초청해 체류를 지원하는 시민단체 '망명의 도시'는 "나는 나의 쓸 자유를 위해 투쟁하지만 이는 곧 여러분의 읽을 자유를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는 루슈디의 메시지를 전한다. '한밤의 아이들'에서 인도가 독립한 1947년 8월15일 자정에 태어난 살림 시나이의 삶과 인도의 현대사를 함께 풀어내던 루슈디는 자신이 인도의 구전문학과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스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인도의 한 독자는 책 속의 이야기는 자신도 알고 있는 민간의 이야기라며 루슈디가 지역으로부터 출발해 보편을 향해 나아간 작가임을 보여준다.

어떤 보편성도 구체적인 지역의 맥락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구체적인 지역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나타나는 특수성이 보편성을 훼손하는 것도 아니다.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가치가 서로 부딪치면서 갈등하고 소통할 때 비로소 경계를 넘어서는 보편성이 생겨난다. 이렇게 본다면 34년 동안 무사했던 루슈디의 최근 피습은 보호무역과 고립주의 확산 속에 자유주의가 처한 위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며 동시에 대화와 소통의 시도를 폭력으로 가로막아 우리의 보편을 향한 노력을 차단하려는 불행한 사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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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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