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의 Fin토크] 어느 두 대통령의 '금융 도박' 1년

임현우 2022. 9. 14.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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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작은 나라 엘살바도르, 그리고 서아시아와 남유럽을 잇는 나라 튀르키예(터키의 새 국호). 서로 1만㎞ 넘게 떨어져 있고 문화권도 완전히 다른 두 국가지만 요즘엔 한 가지 공통점이 생겼다.

경제학자들이 뒷목을 잡을 법한 '이상한 경제 실험'을 1년째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살인율 세계 1위라는 오명이 붙을 정도로 공권력이 추락한 엘살바도르에서 어느 날 갑자기 "비트코인을 쓰라"는 법의 명령 역시 쉽게 먹혀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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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우 기획조정실 기자

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작은 나라 엘살바도르, 그리고 서아시아와 남유럽을 잇는 나라 튀르키예(터키의 새 국호). 서로 1만㎞ 넘게 떨어져 있고 문화권도 완전히 다른 두 국가지만 요즘엔 한 가지 공통점이 생겼다. 경제학자들이 뒷목을 잡을 법한 ‘이상한 경제 실험’을 1년째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지난해 9월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내렸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매달 두 자릿수를 이어가는 ‘비상 상황’ 와중에 연 19%이던 기준금리를 연 13%로 끌어내렸다. 다들 빅스텝에 자이언트스텝까지 밟고 있는데 혼자 역주행하는 셈이다. 그 영향으로 터키의 화폐인 리라 가치는 1년 만에 반토막이 났다. 19년째 장기 집권 중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오른쪽)이 중앙은행을 압박한 결과물이다. 에르도안은 “고금리가 고물가를 유발한다”는 독특한 지론으로 유명하다. 화폐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늘리면 튀르키예 경제에 훨씬 이득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튀르키예 물가 자극한 금리 인하

엘살바도르는 작년 9월 세계 최초로 암호화폐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했다. 2001년 자국 통화인 콜론을 포기하고 달러를 써온 이 나라는 비트코인에도 법화 지위를 부여했다. 나랏돈으로 비트코인 2381개를 사들였고, 코인 지갑 앱을 설치한 국민에게 1인당 30달러어치씩 공짜로 나눠줬다. 암호화폐에 꽂힌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왼쪽)이 밀어붙인 정책이다. 비트코인을 활용하면 해외 송금에 드는 시간과 수수료를 아낄 수 있고 블록체인 기업의 투자도 끌어올 수 있다는 게 그가 내세운 청사진이었다.

나란히 시행 1년을 맞은 이들 정책에 대한 외신들의 평가는 “예정된 실패였고, 예상 가능한 실패였다”(스티브 한케 미국 존스홉킨스대 응용경제학 교수)로 요약된다. 엘살바도르는 스리랑카를 이을 ‘디폴트(채무불이행) 유력 후보’로 꼽히고 있다. 빠듯한 살림에 국가 예산의 15%를 비트코인 보급에 투자했지만 코인 지갑을 쓰는 국민은 20%뿐이고, 기업의 80%는 코인 결제를 받지 않는다. 올 1~7월 해외 송금액 중 비트코인을 활용한 비중은 1.7%에 그쳤다. 살인율 세계 1위라는 오명이 붙을 정도로 공권력이 추락한 엘살바도르에서 어느 날 갑자기 “비트코인을 쓰라”는 법의 명령 역시 쉽게 먹혀들지 않았다.

 엘살바도르 비트코인 보급 부진

튀르키예 국민의 삶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작년 8월 19.25%였던 물가상승률은 지난달 80.21%를 찍었다. 이스탄불 중산층조차 가스불을 켜거나 샤워하는 일이 부담스러워졌고 과일은 사치품이 됐다. 고물가에 힘들어진 노동자를 구하겠다며 최저임금을 올 1월 50% 인상하고 7월 30% 더 높였지만 실질소득은 되레 뒷걸음질했다. JP모간은 “튀르키예는 결국 정책 포기 혹은 경기 침체, 둘 중 하나를 맞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고, 골드만삭스는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물가 상승을 금리 인하로 잡고 가치가 널뛰는 ‘파일 조각’을 법화로 쓴다? 경제학원론을 거스르는 이들의 행보를 국내외에서 뜯어말려도 소용없었다. 에르도안은 자신의 지시에 반기를 든 중앙은행 총재를 연거푸 갈아치웠다. 경제단체가 “저금리 정책을 포기하고 경제학 원칙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촉구하면 “그 경제학 원칙은 서구를 위한 것”이란 답이 돌아갔다. 부켈레는 비트코인 도입의 위험성을 경고한 국제통화기금(IMF)과 무디스를 향해 “DGAF(don’t give a fuck·신경 안 쓴다는 뜻)”라는 트윗으로 받아쳤다.

에르도안은 내년, 부켈레는 후년으로 예정된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다. 공교롭게도 두 대통령은 지난 6월을 마지막으로 기준금리나 비트코인에 대해 공개적인 언급을 내놓지 않고 있다. 주류 경제학을 조롱하던 그 호기는 잠시 접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걸까. 어찌 됐든 우리는 금융의 기본 원리를 외면한 ‘도박’ 같은 정치는 오히려 경제를 망가뜨린다는 당연한 상식을 국제 뉴스를 통해 새삼 재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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