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88] 석유수출국기구(OPEC)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2022. 9. 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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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가 나왔다.” 1976년 초 박정희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그렇게 밝혔다. 포항 영일만에서 질 좋은 원유를 시추했다는 대통령의 고백에 국민이 열광했다. 시원하게 원유 터지는 소리로 시작하는, ‘제7광구’라는 대중가요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이후 감감무소식이었다.

비슷한 해프닝이 1949년 이탈리아에서도 있었다. 하원의원 앙리코 마테이가 “알프스 산맥 밑에 엄청난 양의 원유가 묻혀 있다”는 낭설을 퍼뜨렸다.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석유공사(ENI) 회장으로 취임하여 석유 시추를 직접 지휘했다. 물론 결과는 변변치 않았다.

그러자 마테이는 목표를 외국으로 돌렸다. 당시 국제 원유 시장은 미국과 영국 회사 7곳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마테이는 그들을 ‘칠공주파’ 즉 ‘세븐 시스터스’라고 부르면서 그들이 미국의 입맛에 맞추어 국제 유가를 주물럭거린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석유 산업 과점 구조 해체를 부르짖었다.

아니나 다를까 세븐 시스터스는 1960년 8월 산유국들과 전혀 상의도 없이 원유가를 8%나 인하했다. 소련이 낮은 가격을 앞세워 원유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는 데 대한 대응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원유의 실질 가격은 1948년 대비 이미 10% 이상 하락한 상태라서 산유국들의 반미 감정이 치솟았다. 1960년 오늘 이라크·이란·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베네수엘라 등 5대 석유 수출국이 이라크의 바그다드로 모였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탄생이다.

그때 마테이는 소련과 송유관 연결을 구상하고 있었다. 오늘날 러시아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노르드스트림과 똑같은 생각이었다. 이래저래 미국 눈 밖에 난 마테이는 1962년 10월 의문의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1976년 연두 기자회견 직후 조갑제 국제신문 기자는 대통령의 발언에 의문을 품었다가 유신 정권의 눈 밖에 났다. 그 탓으로 중앙정보부에 불려가 곤욕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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