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희의동행] 아름다운 유산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얼마 전, 이맘때쯤이면 나는 언제나처럼 이국의 낯선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그곳에서 나는 호젓함과 함께 약간의 외로움을 느끼곤 했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늙어 갔지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선구자라는 가곡이 순식간에 그때 그곳의 나로 데려갔다.
나는 그때, 백두산에 가기 위해 그곳에 있었을 것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많고 많은 이국의 풍경들 가운데서 황량하면서도 광활한 그곳이 떠올랐을까.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늙어 갔지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선구자라는 가곡이 순식간에 그때 그곳의 나로 데려갔다. 노래에 얽힌 사연이야 분분하지만 해란강과 용정계곡은 독립군들에게는 잠깐 쉬어 갈 수 있는 쉼터 같은 장소였다. 나는 그때, 백두산에 가기 위해 그곳에 있었을 것이다. 아니, 연해주인가?
과거의 기억들은 그렇게 시간의 타래에 얽히고 섞여 불분명하게 남아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때 나는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여러 감정들 속에서 제법 애국자처럼 굴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해란강과 광활한 만주벌판과 연해주를 헤매면서 타국을 떠돌던 선조들의 울분과 설움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바람은 왜 또 그리 드세던지. 어떤 이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광복자금으로 내놓았고, 어떤 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다. 다들 아끼지 않았고, 이후 자신이 받을 몫을 계산하지 않았다. 그들의 분노와 투쟁과 고단한 삶이 있었기에 나는 여행자의 신분으로 그곳을 밟을 수 있었고, 외롭다는 감정적 사치를 누리면서 그 땅을 순례할 수 있었다.
당시의 내 마음은 복잡했다. 미안함과 고마움은 물론이고 나라에 대한 생각으로 사뭇 비장해지기까지 했다.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 대한민국은 그들이 이뤄내고자 했고, 또 꿈꾸었던 세상이라는 것을 안다. 하긴 그들의 죽음뿐일까. 이어달리기하듯 광복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국의 자유와 번영을 위해 투쟁했던 이들은 또 어떻고.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음을 안다. 유난히 굴곡지고 부침이 심한 역사이지만 그래도 잘 헤쳐 나왔다. 그 힘든 시기시기마다 좌절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었던 저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저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들려오는 미래의 전망들이 아무리 암울해도 그때보다는 낫지 않은가. 선인들이 일궈놓은 유산이 너무나 많다. 나 역시 내게 주어진 구간을 마치고 사라질 때 다음 세대에게 좀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 품격 있고 여유로우며 인류애적 공동체 정신이 살아 있는 그런 아름다운 나라 말이다.
은미희 작가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윗집男 칼부림에 1살 지능된 아내”…현장 떠난 경찰은 “내가 찔렸어야 했나” [사건 속으로]
- “효림아, 집 줄테니까 힘들면 이혼해”…김수미 며느리 사랑 ‘먹먹’
- “이 나이에 부끄럽지만” 중년 배우, 언론에 편지…내용 보니 ‘뭉클’
- “39만원으로 결혼해요”…건배는 콜라·식사는 햄버거?
- “송지은이 간병인이냐”…박위 동생 “형수가 ○○해줬다” 축사에 갑론을박
- “식대 8만원이래서 축의금 10만원 냈는데 뭐가 잘못됐나요?” [일상톡톡 플러스]
- “북한과 전쟁 나면 참전하겠습니까?”…국민 대답은? [수민이가 궁금해요]
- “홍기야, 제발 가만 있어”…성매매 의혹 최민환 옹호에 팬들 ‘원성’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