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장갑 예약' 20-20 LG 유격수, 지금도 기억하는 사령탑 맹훈련과 잔소리[SS스타]

LG 오지환이 13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KBO리그 두산과 경기 후 김윤식에 사탕목걸이를 받고 있다. 2022. 9. 13.잠실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 잠실=윤세호기자] 험난한 비포장 도로를 끊임없이 달리면서 정상에 우뚝섰다. 더불어 지금의 자신을 만든 지도자가 지휘봉을 잡았을 때 커리어하이 시즌을 만들었다. LG 오지환(32)이 개인 통산 첫 번째 20홈런-20도루를 달성한 소감을 전하며 류지현 감독과 고생했던 과거를 회상했다.

오지환은 13일 잠실 두산전에서 3타수 1안타 2볼넷 1득점으로 활약했다. 2회초 첫 타석부터 중전안타로 출루했고 4회초 볼넷, 6회초에도 볼넷을 골라 일찍이 3출루 경기를 완성했다. 6회초 볼넷 후에는 2루 도루에 성공해 시즌 23홈런·20도루로 20-20 클럽에 가입했다. 유격수로서 역대 6번째(이종범: 1996, 1997년, 강정호: 2012년, 김하성: 2016, 2020년) 기록이며 LG 구단 통산 4번째(송구홍:1992, 김재현:1994, 이병규:1999) 기록이다.

LG는 오지환과 선발투수 케이시 켈리, 그리고 타자들의 고른 활약을 앞세워 5-0으로 두산을 꺾었다. 다음은 경기 후 오지환과 취재진 일문일답.

-20-20을 달성한 소감부터 말해달라.

정말 기록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도루도 작전이 나온 상황이었고 그래서 멋있게 슬라이딩 하는 게 아닌 서서 베이스를 밟게 됐다. 자연스럽게 기록이 나온 것 같다. 그런데 막상 기록을 달성하니 내 앞에서 이 기록을 달성한 유격수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알게 됐다. 이종범 감독님과 (김)하성이 모두 정말 어려운 기록을 이미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종범 감독님을 다시 소환하게 돼 뜻깊은 것 같다.

-LG에서는 1999년 이병규 코치 이후 23년 만에 나온 기록이다.

되게 오래 걸리긴 한 것 같다. 한 팀에만 뛰면서 이런 기록을 올릴 수 있어서 기쁘다.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앞으로도 남을 기록을 세운 것도 기분 좋은 일인 것 같다.

-혹시 더 높은 기록도 생각하나?

사실 더 큰 꿈을 꾸기는 한다. 그러나 더 큰 꿈에 앞서 지금 기록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신 지도자분들과 (김)현수형에게 정말 고맙다. 나는 정말 기회를 많이 받은 선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내세울만한 기록이 없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위기도 많았는데 그 때마다 도와주신 지도자 분들, 선배님들에게 고맙다. 현수형이 자신의 지분이 50%는 된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LG 오지환이 13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KBO리그 두산과 경기 후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잠실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유격수로서 20-20이라 더 의미가 깊다. 체력적인 부분에서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체력은 늘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조금 아픈 부위가 있어도 티내고 싶지 않았다. 작년에 수술한 후 올해 체계적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는데 그런 부분도 좋게 작용한 것 같다.

-타격에 대한 고민을 오랫동안 했다. 올해 방향을 찾은 것 같은데.

어릴 때부터 내가 그렸던 유격수가 지금과 흡사하다. 타율이 좀 떨어져도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타자가 되고 싶었다. 두 자릿수 홈런을 넘어서 20홈런을 치면 주전 유격수로 잘 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올해는 신기하게 잘 됐을 때 감을 잃지 않고 꾸준히 페이스를 이어가는 시기가 길다. 잘 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또다른 내가 되곤 했는데 올해는 그런 게 확실히 적다. ‘내가 여태까지 무슨 야구를 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럼 향후 3할 30홈런 같은 엄청난 기록도 생각하나?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올해도 안 좋았던 시기가 너무 아깝게 다가온다. 시즌 초반부터 이런 페이스로 갔다면 3할 30홈런은 몰라도 2할8푼에 홈런 27개 정도는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올해 득점권 타율(0.321)이 높다. 그리고 5번 타순으로 가면서 커리어하이 시즌을 만들었다. 류지현 감독은 순간순간 엄청난 집중력을 보인다고 한다.

득점권에서 나도 모르게 집중력이 높아지는 건 확실히 있는 것 같다. 찬스가 되면 ‘내가 여기서 하나 치면 우리팀이 한결 수월하게 갈 수 있다’ 같은 생각이 들면서 집중하게 된다. 그러다 주자가 없으면 나도 모르게 풀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5번 타순은 사실 상상도 못했다. 나는 5번에 맞지 않는 타자라고 생각했다. 팀을 더 깎아먹을 것 같았다. 그런데 3번에서 현수형이 홈런 쳐주고 4번에서 (채)은성이가 3할로 잘 쳐주면서 부담이 느껴지지 않았다.

-20-20을 달성하면서 골든글러브를 예약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골든글러브 수상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모르겠다. 다만 지금 리그를 돌아보면 20홈런 유격수가 드물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내 기록이 완벽한 수치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이전에 하성이가 했던 3할 30홈런을 생각하면 지금 내 기록에 만족할 수 없기도 하다.

-류지현 감독이 과거 함께 훈련하면서 유격수 골든글러브 받자고 독려했다고 했다. 훈련하면서 짜증날 정도로 싫은 소리도 많이 했다고 하더라.

그 때는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감독님께서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고 잡아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오랫동안 훈련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벤트레그 슬라이딩 캐치도 감독님이 알려주셨다. 당시 정말 잔소리도 많이 하셨다. 공 흘리지 마라. 장난이라도 공 놓치는 모습 보이면 안 된다. 너는 성격이 너무 급하다. 천천히 해라. 너무 늦다. 너무 빠르다. 등등 정말 잔소리 많이 하셨다.

데뷔 첫 20-20을 달성한 LG 오지환이 13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KBO리그 두산과 경기 후 류지현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잠실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과거 주장이 되면 안 된다고 했던 게 기억난다. ‘내가 이슈가 되면 팀 전체에 안 좋다’고 했었다. 하지만 올해 주장을 맡고 본인도 팀도 잘 되고 있다.

그 때는 두려웠다. 막 결혼했었고 가족이 생겼는데 내 이름이 또 안 좋게 올라오는 게 무서웠다. 하지만 주장이 된 지금은 팀 분위기가 정말 좋다. 사실 이런 분위기를 다 현수형이 만들어줬다. 현수형이 주장하면서 만든 팀분위기를 이어 받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사실상 현수형이 주장이다. 그래서 주장을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나 두려움도 없다.

LG 오지환이 13일 잠실 두산전에서 20-20을 달성한 후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잠실 | 윤세호기자 bng7@sportsseoul.com

-목에 건 20-20 기념품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애들한테 한 줄씩 주면 될 것 같다. 좀 부끄러운데 그래도 기념해서 이런 상을 받아 기분이 좋다.

bng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