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권모 칼럼] '검사 대통령' 본색
‘검사 대통령’은 바뀌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변화는 과오에 대한 인정과 사과를 전제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 지지율을 폭락시킨 여러 국정 난맥과 인사 실패, 비선 논란, ‘김건희 의혹’ 등에 대해 여태까지 한 번이라도 성찰과 자성, 사과의 자세를 보인 적이 없다. 최소한 국민의 기대에 못 미쳤다는 정도의 되돌아봄도 없었다. 윤 대통령은 수도권 집중호우 피해와 관련, “불편을 겪은 국민께 정부를 대표해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다. 물난리에 고통을 겪고 정부의 대처에 실망한 국민에게 “죄송한 마음”이라고 한 게 최대치의 사과다. 언젠가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 유우성씨가 “검사들은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윤 대통령이 사과를 거부하는 것은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게다. 실은 국민의 눈높이와 상식의 기준이 아니라 불법·합법, 유무죄를 가르는 법기술자의 기준으로 국정 사안을 대하기 때문이다. 인사 실패나 검찰공화국 논란, 비선 의혹, 사적 채용 등을 두고 제기되는 비판에도 “뭐가 문제냐”고 당당(?)할 수 있는 건 그래서다. 5세 취학안 논란으로 “훌륭한 사람” 박순애 교육부 장관을 경질하면서도 대통령은 일말의 책임감조차 피력하지 않았다. 교육부 업무보고 때 5세 취학안에 대해 ‘검토하라’가 아니라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한 건 윤 대통령이다. 극우 유튜버와의 유착이 논란인 와중에 대통령 부부의 추석선물을 극우 유튜버에게 버젓이 보냈다. 문제의식조차 없다는 방증이다.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도그마에 빠지면 위기를 외부 환경 탓으로 돌리게 된다. 지지율 폭락을 이재명 야당의 반대, 여론조작, 내부총질 탓이라고 간주하면 인적 쇄신, 국정 혁신의 요구가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윤 대통령이 고비마다 “전 정부는 안 했나”라거나 “전 정부가 더했다”고 대꾸하는 것은 진심일 터이다. 세번째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에 ‘또 기획재정부’ ‘또 서울대’가 지명됐다. 정무 기능을 보강한다며 새로 임명한 대통령실 정무1비서관은 극우적 주장을 펴온 인물이다. 요지부동 마이웨이 인사가 계속될 판이다.
대통령 지도력이 도마에 오른 ‘검사 대통령’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전공인 수사와 사정 작업이다. 복합위기를 타개할 국정 능력은 불비하고, 인적 쇄신이나 국정 혁신을 할 생각도 없다면 결국 의지할 건 사정뿐이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국가 사정기관 통제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검찰 출신을 인사, 행정, 정보, 금융까지 사정의 요로에 포진시켜 직할 체제를 구축했다.
윤석열 정부가 위기 국면에 처하자 사정 카드를 꺼내들었다. 검찰, 경찰, 감사원, 국정원을 비롯한 사정기관이 전방위적으로 전 정권과 야당을 옥죄고 있다. 윤 대통령과 정부 요직에 포진한 검찰 인사들이 유일하게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 사정 정국인 셈이다. 새로 선출된 제1야당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정기국회 첫날 검찰 소환을 통보하고, 곧바로 기소했다. 민주당은 “전쟁”이라고 반발했지만, 실은 검찰이 대놓고 ‘전쟁’을 유도한 꼴이다. 선거법 위반으로 이재명 대표를 기소한 건 시작에 불과하다. 경찰은 어제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이 대표를 제3자 뇌물공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대장동·백현동 개발,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에 대한 수사와 기소도 계속될 것이다. 선거법 위반과는 차원이 다른 ‘돈’과 연관된 사안이다. 집요한 수사와 기소, 재판이 진행될수록 파열은 커질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고위 인사들을 겨냥한 소위 ‘신적폐’ 수사도 줄지어 있다. 서해 공무원 피격·탈북어민 북송 사건 등과 관련해 대통령기록관만 벌써 세번째 압수수색을 벌였다. 최종 타깃이 어디인지 짐작하게 한다.
민주당이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김건희 특검법’을 당론으로 발의하고, 현직 대통령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 대표의 정치생명은 물론 당의 명운이 달려 있으니 강경 대응 외에는 달리 길도 없다.
‘검사 대통령’이 달라지지 않는 한, 이 ‘전쟁 같은 정치’는 이 정권 내내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화와 타협, 협상을 요체로 하는 정치는 디딜 땅이 없어진다. 포연이 자욱한 정쟁과 대결로 날을 지새우면서 민생은 뒷전으로 밀리고, 의회의 역할은 형해화될 터이다. 이제 정치권에 대한 분노와 환멸이 임계점에 이를 때까지, 여야의 전쟁 같은 정치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게 됐다. 돌이켜보면, 정치를 모르는 ‘검사 대통령’을 선택한 순간 한국 정치의 이 비극적 행로는 예정됐을 것이다.
양권모 편집인 sul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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