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달군 인플레 논쟁.. 베조스, 노벨경제학상 크루그먼에 판정승
"경기 부양책, 인플레 자극" 우려
돈 풀어도 물가 안뛴다던 크루그먼
"내 예측이 틀렸다" 결국 꼬리 내려
최근 미국에선 유례없는 인플레이션(고물가)과 민주당 정부의 경제정책을 둘러싸고 정부와 유력 기업인 그리고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한창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등 쟁쟁한 인사들이 논쟁의 참여자다. 이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서로를 공격하고 인플레이션의 원인과 해법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심각하게 지속되면서 베조스가 판정승을 거뒀다는 평가다.
◇대통령에 반기든 베조스= 논쟁에 불이 붙은 건 바이든 대통령이 법인세를 올리면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해 베조스가 '가짜 뉴스'라며 맹비판하면서다. 이를 계기로 실리콘 밸리의 유력인사들이 앞다퉈 바이든 행정부를 비난했고, 경제 전문가들도 40여년 만의 인플레이션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갈등 국면이 확대됐다. 우리나라라면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 펼쳐진 것이다.
미국의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8.5% 올랐다. 1981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9.1%)을 기록한 6월에 비하면 상승폭이 둔화됐지만 여전히 인플레이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다.
지난 5월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계정을 통해 "부유한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면 인플레이션을 낮출 수 있다"는 트윗을 날렸다. 인플레이션 기조에서 벗어나려면 법인세를 더 걷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베조스는 이에 대해 자신의 계정에서 "최근 새로 만들어진 허위정보위원회가 이 트윗을 검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그릇된 추론'위원회를 구성해야 할 수도 있다"고 비꼬았다. 또 "법인세 인상을 논의하는 것은 좋다. 인플레이션을 길들이는 걸 논의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이를 하나로 묶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도 했다. 법인세 인상과 인플레이션은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주장이다.
베조스는 다음 날에도 "(바이든 행정부는) 이미 경기가 과열된 상황에서 추가 부양책을 추진해 인플레이션 위험을 높이고 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어 "인플레이션은 가장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퇴행적인 세금"이라며 "잘못된 방향은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코로나19 사태에 재정완화 정책을 펴 대응한 것이 높은 인플레이션의 주원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같은 날 바이든 대통령이 트위터에 "올해 우리는 1년 만에 1조5000억달러의 재정적자를 줄였다. 재정적자를 줄이는 것은 인플레이션 압박을 완화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한 데 대한 비판을 이어간 것이기도 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개인 관심사와 사업에 대한 글을 올리던 베조스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맞선 첫 사례"라고 보도했다.
백악관은 이례적으로 반박 성명을 내고 아마존의 '반(反)노조 경영' 및 법인세 등을 거론하면서 역공에 나섰다. 앤드루 베이츠 백악관 언론담당 부보좌관은 "베조스가 정부에 비판적인 트윗을 올린 시점은 바이든 대통령이 아마존을 포함한 노조 지도부를 만난 직후라는 게 놀랍지 않다"고 했다. 그러자 베조스는 지지 않고 또다시 트위터로 "노조도, 부자도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는다. 그들(백악관)은 주제를 흐리고 싶어 한다"고 맞섰다.
베조스는 창업 때부터 무노조 경영을 고수한 기업인이다. 바이든 정부의 친노조 정책에 불만을 표시한 것이란 평가다. 베조스 외에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 기업가들이 바이든 대통령이 경기 대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머스크는 자사 경영진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미국 경제에 관해 "매우 안 좋은 느낌"을 받는다며 직원 10%를 감축할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다시 베조스는 정유사에 휘발유 가격을 낮추라고 압박한 바이든 대통령을 공개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위터에 "주유소를 운영하고, 휘발유 가격을 책정하는 회사에 보내는 내 메시지는 간단하다"며 "지금은 전쟁과 전 세계적 위험이 닥친 시기"라고 전했다. . 이어 "당신이 청구하는 (석유) 가격을 당신이 사오는 가격을 반영하도록 낮춰라. 지금 당장 해라"라고 덧붙였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석유 메이저 엑손모빌을 거명하면서 "하느님보다 돈을 더 번다"고 한 일도 있다.
베조스는 바이든의 이 트윗을 리트윗하며 "기본적으로 잘못된 방향이거나, 기본적인 시장 역학에 대해 깊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에 백악관도 참지 않았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트위터를 통해 "유가는 지난달 배럴당 약 15달러 하락했지만 휘발유 가격은 거의 내려가지 않았다. 이는 '기본적인 시장 역학'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오랜 민주당 지지자이며 후원자로 알려져 있고, 진보 성향 신문인 워싱턴포스트의 사주이기도 한 베조스가 이처럼 날을 세우는 것은 인플레이션을 야기한 무리한 정부 부양책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경제 전문가들도 참전= 베조스의 논쟁 점화에 경제 전문가들도 참전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역임한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트위터에서 "베조스가 바이든 대통령을 비판한 내용은 대체로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며 "세금을 인상하면 수요를 감소시켜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적으로 합리적이며, 그런 점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인식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는 서머스와 지난해부터 인플레이션 전망을 두고 수차례 설전을 벌였다. 서머스 전 장관은 지난해 초부터 "경기 부양책이 한 세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인플레이션 압력을 자극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크루그먼 교수는 '바보' 등의 원색적 단어로 쓰며 서머스에 반대했다.
그는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뉴욕타임스(NYT) 칼럼 등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크루그먼 교수는 팬데믹 이후 경기회복이 더디고 글로벌 공급체인이 정상화되지 않은 영향으로 일부 상품의 가격이 상승할 수 있을 것이나 인플레이션은 심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최근 크루그먼 교수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자신의 주장이 틀렸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NYT 기고문에서 지난해 바이든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책으로 마련한 1조900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에 대한 자신의 예측이 틀렸다고 한 것이다. 당시 그는 대규모 재정지출에도 물가가 크게 뛰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크루그먼 교수는 "팬데믹으로 사람들이 서비스 대신 상품 지출을 늘리는 등 소비 패턴이 달라졌다. '대퇴사의 시대'에 이민자까지 급감하면서 일손이 부족해 생산도 줄었다"고 전했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과거의 경제 모델들이 들어맞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과거 모델을 적용했다"며 "하지만 코로나19가 만든 새로운 세상에서는 안전한 예측이 아니었다"고 시인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것이라던 자신의 과거 발언이 틀렸다고 공개 석상에서 인정했다. 그는 지난달 CNN과의 인터뷰에서 "에너지와 식품 가격 상승, 공급망 병목 현상 등으로 경제가 예상치 못한 충격을 받았다"며 "인플레이션 향방에 대한 나의 과거 예측은 틀렸다"고 말했다.
이윤희기자 stel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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