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 칼럼] 오만한 엘리트의 나라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능력주의가 오늘날 미국 사회의 공동선을 파괴하는 폭군’이라는 도발적인 주장으로 화제가 된 마이클 샌델 교수의 문제작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특히 나의 눈길을 끈 것은 ‘트럼프 현상’의 원인을 무엇보다도 미국 엘리트의 오만(hubris)에서 찾고 있다는 사실이다. 샌델에 따르면 미국 역사에서 오늘날처럼 오만한 엘리트는 없었고, 이들의 행태가 지금처럼 공동체에 해를 끼친 적이 없었다.
엘리트의 오만으로 치자면 한국 엘리트도 결코 빠지지 않는다. 한국 사회를 한번 둘러보라. 오늘날처럼 오만한 엘리트들이 지배한 적이 과연 있었던가.
코로나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던 2020년 여름, 공공병원 의사 3000명을 늘리겠다는 정부의 발표에 항의해 거리로 나선 전공의들이 내보낸 성명서는 충격을 넘어 비애를 안긴다. 그들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 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와 “실력은 한참 모자라지만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 중에서 ‘어떤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싶은지’ 묻는다. 이 성명서는 한국 교육이 길러낸 ‘최고 모범생들’의 미성숙한 내면세계를 숨김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귀중한 역사적 기록이다.
판사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고위직 판사가 재판에 개입하거나, 재판을 두고 정부와 거래한 초유의 사법농단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문은 보는 이의 눈을 의심케 한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법관 독립을 침해한 위헌 또는 부적절한 재판 관여에 해당한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판사에게는 다른 판사의 재판에 개입할 권한 자체가 없다. 수석부장판사의 재판 개입은 월권이지 권한 남용이 아니어서 직권남용죄는 무죄”라는 판결을 내렸다. 참으로 국민을 우롱하는 오만한 엘리트의 궤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논리대로라면 사법농단을 벌인 자는 누구도 처벌할 수 없다는 말 아닌가.
한국 엘리트들의 오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피의자에게 고급 향응을 받은 검사들을 기소하지 않은 검찰이나, ‘봐주기 수사’의 백미로 결국 무죄 판결로 끝난 검찰 출신 김학의 전 법무차관 사건을 상기해보라.
대학교수는 다른가. 표절이 확실시되는 대통령 부인의 논문에 대해 눈감고 넘어가자고 결의한 국민대 교수들, 대기업의 사외이사로 거액의 회의비를 챙기며 거수기로 전락한 교수들은 또 어떤가. 창피스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능력주의가 만들어낸 오만한 엘리트들이 미국을 야만사회로 만든 주범’이라는 샌델 교수의 주장을 읽으며 나는 곧장 독일의 엘리트들을 떠올렸다. ‘내가 독일에서 공부한 7년 동안 오만한 엘리트를 본 적이 있는가.’ 놀랍게도 한명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대다수가 매우 겸손하고 지나칠 정도로 친절했던 기억밖에 없다. 같은 질문을 아내에게, 또 독일에서 공부한 연구소 동료 교수들에게도 던졌지만 모두 같은 답이 돌아왔다. 오만한 엘리트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게 믿을 수 있는 이야기인가.
한국과 미국의 오만한 엘리트와 독일의 겸손한 엘리트,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교육의 차이에서 연유한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과 미국은 세계 최고의 경쟁교육으로 악명이 높은 나라다. 그러니 이른바 엘리트 대학(미국의 ‘아이비리그’, 한국의 ‘스카이’)을 나온 이들은 자신이 누리는 모든 부와 권력을 자신의 ‘능력’(재능과 노력)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학교라는 ‘사활을 건 전쟁터’에서 쟁취한 전리품이라고 여긴다. 그러니 오만할 수밖에.
반면 독일의 엘리트는 대부분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라는 원칙 아래 단행된 1970년의 교육개혁을 통해 변화된 학교에서 성장한 이들이다. 등수도 석차도 없는 교실에서 비판적 사고와 민주적 참여를 강조하는 교육을 받은 그들은 자신의 부와 권력은 개인적 성취라기보다는 사회적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보이는 겸양의 미덕과 사회적 의식은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유독 한국의 엘리트 중에 대중을 깔보는 오만한 자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잘못된 교육 탓이다.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용서되는 교실에서 12년 동안 자란 아이가 어떻게 성숙하고 기품있는 인간이 되겠는가. 미성숙하고 오만한 한국의 엘리트 자신도 기실 한국 교육의 피해자다.
소수의 오만한 엘리트와 다수의 열등감에 시달리는 대중을 낳는 능력주의 경쟁교육은 이제 끝내야 한다. 모든 아이가 예외 없이 존엄한 인간으로 존중받고, 인정받고, 사랑받는 ‘존엄주의’ 교육으로의 전환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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