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고급화로 증류식 소주 선호.."희석식보다 6배 비싸도 사요"
100% 원주쌀로 증류하는
박재범 소주 혼술로 인기
'포켓몬빵'만큼 구하기 힘들어
편의점 재고 알림 앱도 나와
증류주 시장 올 2배 급성장
일품진로 한정판 40만원 거래
화요 상반기 매출 350억 육박
◆ 유통 판 뒤집는 소비자 ③ ◆
가수 박재범이 만든 원소주는 지난 2월 여의도 '더 현대'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며 정식 출고됐다. 가격은 1병에 1만4900원으로 초록색 병에 담긴 일반 희석식 소주 대비 6배에 달했지만 연일 '완판' 행진을 이어간다.
이후 옹기 2주 숙성 과정을 빼고 가격은 2000원 낮춘 '원소주 스피릿'을 7월부터 GS25 편의점 유통망을 통해 공급했다. 원소주 스피릿도 편의점 '오픈런' 사태를 일으킬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소비자들은 GS25 앱 '나만의 냉장고'에서 원소주 상품 재고를 확인하며 '구매 후기'를 공유하고 있다.
이 앱에서는 거주지 반경 1㎞ 내에 있는 GS편의점에서 원소주 재고를 파악할 수 있다.
프리미엄 증류주에 대한 소비자 관심은 '화요'와 '일품진로' 매출 실적으로도 확인된다. 증류식 소주 대표 격인 '화요'는 매출이 2020년 255억원에서 2021년 360억원으로 40% 이상 늘었다. 올해 8월까지 매출이 지난해 전체 매출과 유사한 35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이트진로 증류주인 일품진로도 지난해 판매량이 전년 대비 78% 급증했다. 특히 '일품진로 22'는 8000병 '한정판'이라는 희소성까지 부각되며 중고거래 사이트인 '당근마켓'에서 35만~40만원에 가격이 형성돼 있다. 일품진로 출고가는 18만원이다.
한국 전통 소주는 원래 화요·일품진로·원소주와 같은 '증류식'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유행하던 신식 소주 제조 방법인 '희석식'이 들어왔고 한국 소주시장은 희석식 소주가 장악했다. 반면 일본 소주시장은 이미 증류식 소주가 대세다. 일본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증류식 소주는 2005년 50만2000㎘가 판매돼 희석식 소주(49만7000㎘)를 앞서기 시작했고 이후 증류식 소주 판매량이 희석식 소주를 앞서고 있다.
박재범 소주 돌풍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에서도 코로나19로 집에서 '혼술'하는 문화가 정착하면서 소비자들이 내가 마시는 '술의 정체'에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이제는 가격이 비싸도 '원산지'와 '재료'를 따져보고 술을 마시는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희석식 소주가 '부어라, 마셔라' 취하기 위한 술이라면 증류식 소주는 맛과 향을 음미하며 즐기기 위한 술이란 것이다. 박재범 소주는 강원도 원주산 쌀을 100% 원료로 해 만들었다며 지역과 재료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주류 칼럼니스트인 명욱 숙명여대 객원교수는 "지역문화를 높이 평가하고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들이 소주시장 변화를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에 익숙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다품종 소량생산' 상품을 즐기는 MZ세대 소비 패턴도 증류주 돌풍의 한 원인이다. 지역마다 수제맥주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처럼 국내 소주산업에도 '마이크로 브루어리' 증류주 업체가 각 지역에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자신이 체험하고 소비하는 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인증하면서 "내가 소비하는 게 나 자신"이라는 취향을 표현하는 MZ 소비자에게는 박재범 소주를 구하는 과정 자체가 일종의 '체험소비'다.
박재범 소주 제조업체 원스피리츠 관계자는 "일반 소주와 박재범 소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소비자들이 박재범 소주를 사서 그냥 마시는 게 아니라 구매했다고 '인증'하고 마셨다고 '인증'하고 선물했다고 '인증'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박재범 원소주가 가지고 있는 '스토리'에도 주목하고 있다.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을 만든 박재범의 스토리를 마신다는 평가도 나올 정도다. 소비자들은 '원'소주에 '원한다, 하나다(one), 이겼다(won)'는 의미를 부여한다. 또 강원도의 '원', 원주의 '원'으로 지역색을 뚜렷하게 했다는 다양한 해석을 내놓으며 원소주의 스토리를 즐기고 있다.
[김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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