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정치의 실종, 법치의 오남용

김희원 2022. 9. 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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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선거 관련 고소·고발이 이토록 극심한 대선은 없었다.

20대 대선 선거사범 입건이 2,001건으로 19대(878명)의 두 배가 넘고, 기소율은 30.4%(19대 58.3%)로 절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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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법률위원장(왼쪽)이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고발하는 고발장을 제출하기에 앞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선거 관련 고소·고발이 이토록 극심한 대선은 없었다. 김용민 평화나무 이사장이 “김건희 여사는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다 읊어야 할 것”이라며 “(김 여사가) 구약을 다 외운다”고 했던 윤석열 대통령을 고발한다니 말 다했다. 야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관련 해명이 허위사실 유포라며 윤 대통령을 고발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백현동 개발사업 부지 용도변경이 “국토부 협박”이라는 발언 등으로 기소됐다. 검찰 통계도 실상을 보여준다. 20대 대선 선거사범 입건이 2,001건으로 19대(878명)의 두 배가 넘고, 기소율은 30.4%(19대 58.3%)로 절반이다. 흑색선전도 많았고 고발도 마구잡이라는 말이다.

□ 선거법 위반은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일이라 신속히 수사해 위중하면 선출직을 박탈한다. 거짓말이나 금품 등으로 민의를 왜곡하면 선거를 다시 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재임 중 소추되지 않는 대통령을 고발하고, 대선에서 낙선한 야당 대표를 기소하는 건 의도가 의심스러울 뿐이다. 오히려 엄정한 수사가 이뤄져야 하는 쪽은 주가 조작이나 개발 의혹이라는 본질이다.

□ 문재인 전 대통령은 18대 대선에서 낙선한 뒤 국정원 댓글 선거개입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지고 국정원이 바로 서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면서도 “이제 와 선거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순 없다.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중대한 범죄가 있었다 해도 기정사실이 된 선거결과를 뒤집는 것은 혼란이 너무 크다는 뜻이다. 미 대선에서 조지 W 부시와 경쟁했던 앨 고어가 법정 다툼을 포기한 것도 같은 이유다. 법에 기대 끝까지 가자고 했다면 나라가 쪼개지고 사법부가 대통령을 선출하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을 것이다.

□ 대선 후 지금까지 법치는 오남용되고 정치는 실종 상태다. 지난 대선이 어느 때보다 법적·도덕적 결함이 많은 후보들 간 경쟁이었다는 사실은 국민 모두에게 비극이었다. 하지만 유권자가 모르고 표를 던진 건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정치인들이 정치를 복구하고 다시 대화와 타협의 장을 열 때다.

김희원 논설위원 h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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