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의 역설..세계 최고 수조 가졌지만 회사는 위기, 원인은[르포]

이유섭 2022. 9. 1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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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시흥캠퍼스 중앙연구원 르포
세계 최대 규모 공동·예인수조
음향기술 연구·잠수함 무기시험 가능
7년전 정부 결단으로 설립됐지만
아직까지 '적자의 늪' 못 벗어나
경기도 시흥 대우조선해양 중앙연구원에 있는 예인수조의 모습. [김호영 기자]
2015년 8월 어느 아침.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연구실에서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자구책 마련을 위한 첫 회의가 열렸다. 대우조선해양을 향한 산업은행·수출입은행 구조조정본부장들의 질타가 1시간 넘게 이어졌다. 그리고 찾아온 휴식시간. 근처에 차 한 잔 할 곳이 없다보니, 회의 참석자들은 선박 시험용 선형수조 구경이나 가보기로 했다.

난생 처음 보는 110m 길이 예인수조 규모에 산은·수은 관계자들이 놀라고, 이를 본 한 회의 참석자가 용기내 말한다. "기술 연구·개발(R&D)을 위해서는 시험수조가 꼭 필요한데, 조선 3사 중 대우조선만 수조가 없습니다. 수조를 만들어주시면 열심히 돈 벌어 갚겠습니다"

구조조정 논하는 자리에서 추가 투자를 청하는 '눈치 없는' 발언에 겨우 좋아진 분위기가 다시 무거워진다. 그런데 회의가 끝난 뒤 채권단 관계자가 대우조선 측에 한마디 던진다. "수조 짓는데 얼마 필요한지 예산안 제출 해보세요" 그리고 2달 뒤 청와대 '서별관 회의'서 수조 건설비 약 1800억원 포함 4조2000억원에 달하는 대우조선 공적자금 지원이 결정된다.

3년 뒤인 2018년 말 대우조선해양은 첫 수조를 갖게 됐다. 대우조선공업 설립 후 40년 만이었다. 그 뒤에는 가장 큰 위기 순간에 가장 최고·최신의 수조를 짓는 정부의 결단이 있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도 '위기의 대우조선'과 '세계 최고의 수조'라는 역설은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 시흥 대우조선해양 중앙연구원 직원들이 모형선박을 예인수조에 띄우고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최근 서울대 시흥캠퍼스에 있는 대우조선해양 중앙연구원을 찾았다. 당초 대우조선은 서울 마곡에 R&D 센터를 지으려 했지만, 구조조정 방침에 따라 부지를 매각하면서 서울대 시흥캠퍼스로 위치를 바꾸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서울대는 1만5000평 부지를 대우조선에 25년 무상으로 임대를 줬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공동(空洞·Cavitation)수조'의 시험관측부였다. 길이 13m·높이 2.4m·폭 2.8m 크기 관측부에서는 최대 초속 15m로 빠르게 흐르는 물에서 프로펠러를 비롯한 각종 핵심 부품 성능을 시험한다. 프로펠러서 생성되는 공기방울을 이용해 소음을 차단하는 고급 기술 등이 여기서 개발되는 것이다. 공동수조의 경쟁력은 관측부 크기에서 나오는데, 대우조선이 보유한 건 전세계 상업용 수조 중 가장 큰 규모다. 관측부 아래층에 설치된 터널 속에는 3600t의 물이 들어가 있고, 이를 4.5㎿ 모터로 돌림으로써 다양한 환경에서의 실험을 가능케 한다.

뒤이어 '예인수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길이 300m·폭 16m·깊이 7m로 역시 국내외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여기서는 12m 길이 모형 선박을 움직이며 저항력·자동추진·자율운항·항적 등을 시험해볼 수 있다. 특히 예인수조는 7m 내에서 수심 조절을 할 수 있어, 깊은 바다를 지나는 컨테이너선부터 얕은 연안서 작전을 수행하는 군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선박에 대한 맞춤형 실험이 가능하다는 강점도 갖고 있다. 일부 모형 선박은 3D 프린터로 제작된다.

해군과 방위산업체인 LIG넥스원 등 극소수 기관만 보유한 '음향수조'도 있다. 군함·잠수함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인 음파를 탐지하거나 무력화 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곳이다. 어뢰를 비롯한 잠수함용 수평발사장치 시험 시설도 있는데, 이를 갖고 있는 조선사는 세계적으로 2~3곳에 불과하다.

경기도 시흥 대우조선해양 중앙연구원 예인수조에 띄우는 모형선박의 모습. [김호영 기자]
무엇보다 공동·예인·음향 그리고 잠수함용 무기시험 수조가 한데 모여 있는 건, 글로벌 조선사 통틀어 대우조선 중앙연구원이 거의 유일한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만들어진지 불과 4년밖에 안 된 최신 수조인 셈이다. 경쟁사인 현대중공업의 수조는 1984년, 삼성중공업의 수조는 1996년에 만들어졌다. 대우조선 중앙연구원 개소가 2018년 12월이고, 현대중공업그룹이 산업은행과 대우조선 인수 계약을 체결한 게 2019년 3월이다. 유럽연합(EU)의 반대로 인수는 없던 일이 됐지만, 수조가 낙후된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이 보유한 특수선 건조능력과 더불어 이 수조를 탐냈다는 후문이다.

경기도 시흥 대우조선해양 중앙연구원 직원이 모형선박을 만들고 있는 모습. [김호영 기자]
최동규 대우조선해양 중앙연구원장은 "배를 만드는 건 조선업의 일부일 뿐"이라며 "세계 최고의 수조를 통해 핵심 설비·기자재 등을 자체 기술로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 원장은 이어 "수조를 보유하게 됨으로써 수시로 바뀌는 환경 규제와 다양해지는 발주사 주문에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같은 첨단 시설이 대우조선의 경쟁력에 어느정도 기여했는지 객관적 평가를 하긴 어렵다. '고압천연가스 연료공급장치(FGSS)'를 비롯해 대우조선에 '액화천연가스(LNG)선 명가'라는 타이틀을 안겨준 기술들은 세계 최고의 수조를 보유하기 이전에 개발됐다. 대우조선은 부품·기자재 등의 국산화를 성과로 내세우고 있지만, 진작 민영화에 성공했다면 세계 최고의 수조도 더 빛을 발했을 수 있다.

20년 이상 번번이 민영화에 실패한 대우조선은 인재 유출부터 최근 하청업체 파업까지 내홍을 반복하고 있다. 새 정부의 민영화 의지에 대우조선이 보유한 '알짜' 자산의 운명도 달려 있는 듯하다.

[이유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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