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 밸류에이션, 미국의 절반..'코리아디스카운트' 심각

노자운 기자 2022. 9. 1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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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효과로 유입됐던 외국계 자금, 재이탈
인플레로 원자잿값 오르고 수출 실적 부진
코스피 12개월 선행 PER 8.7배..코로나 팬데믹 초기 수준으로 떨어져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강도 긴축 정책과 미 달러화 강세 속에서 글로벌 주식시장이 하방 압력을 받고 있는 가운데, 우리 증시의 ‘저평가’가 유독 심각하다. 우리 상장사들의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이 에너지 수급 우려로 경기 둔화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유럽, 코로나19에 따른 봉쇄 조치로 경제적 타격이 큰 중국보다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증시의 성적이 다른나라 증시보다 부진한 데는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 물적분할과 중복상장이 만연해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는 구조적 문제가 있으며, 경기 사이클의 앞단에 위치해 둔화 리스크에 상대적으로 빨리 노출되는 반도체 산업의 비중이 높다. 한국은행이 다른 아시아 주요국 중앙은행들과 달리 미 연준을 따라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고 있는 것 역시 코스피지수의 하방 압력을 높이는 요인이다.

그래픽=이은현

1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현재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은 8.7배에 불과하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시작됐던 2020년 초(8.8배)와 비슷한 수준이다.

국내 상장사들의 밸류에이션은 타 주요국 상장사들과 비교해 지나치게 낮다. 중국 상장사들의 평균 PER이 10.8배이며, 유럽은 11.4배, 일본은 12.8배다. 미국 상장사들의 평균 PER은 17.5배다. 한국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밸류에이션보다 두 배가량 높은 셈이다.

실제로 최근 한 달간 코스피지수의 성적은 아시아 주요국 증시 가운데 가장 부진했다. 지난 1개월간 코스피지수는 5.9% 하락했다. 같은 기간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0.4%, 홍콩항셍지수는 3.4%, 일본 니케이225지수는 1.1% 내렸다. 그나마 대만 가권지수가 큰 낙폭(4%)을 기록했으나 우리 증시보다는 성적이 좋다. 미 달러화의 강세 속에서 주요 신흥국 통화 가치가 모두 내렸으나, 우리 증시가 받은 타격이 유독 컸던 것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7~8월 우리 증시에 유입됐던 외국계 자금이 다시 빠져나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최석원 SK증권 지식서비스부문장은 “작년 초부터 원화 가치가 30% 절하된 반면, 같은 기간 중국 위안화 가치는 8% 하락하는 데 그쳤다”며 “환율 효과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들의 보유 자산 중 미 달러화로 표시된 한국 주식의 비중이 많이 낮아졌을 것이고, 이는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에 좋은 기회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부문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7~8월 두 달간 패시브펀드(특정 주가지수를 구성하는 종목들을 담아 지수 상승률만큼의 수익률을 추구하는 펀드)를 통해 우리 증시에 유입됐으나, 최근에는 패시브펀드를 통한 유입을 마무리 짓고 액티브펀드(특정 지수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매니저의 재량에 따라 종목, 매매 시점 등에 변화를 주는 펀드)로 매도를 늘리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기업들의 주가가 저평가 받는 현상)’ 이면에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

먼저 중복상장 등 우리 증시의 구조적 문제가 주가 저평가를 낳고 있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최근 5년 순이익 가운데 자회사 중복상장으로 더블카운팅(두 번 계산)된 이익 비중은 10~12%에 달한다. 전체 더블카운팅에서 삼성그룹의 비중이 51.8%로 가장 높다.

이정빈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중복상장으로 인해 이익 중첩 효과가 발생하는데, 이를 제거하면 현재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주당 순이익(EPS)을 하향 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PS를 하향 조정하면 PER(주가를 EPS로 나눈 값)은 올라가게 된다. 이 연구원은 중복상장으로 인한 착시 현상을 배제한다면 PER이 약 1배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만연한 물적분할 및 중복상장은 거버넌스(지배구조) 측면에서 우리 증시의 투자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최 부문장은 “상장사들의 물적분할이 잦았던 재작년부터, 다른 나라 증시가 다 오를 때 코스피지수만 못 오르고 하락기에는 더 떨어지는 일이 반복돼왔다”고 말했다.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에서 컨테이너 선적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뉴스1

원자재 수입 의존도, 제조 기업들의 수출 비중이 높다는 것도 한국 기업들의 저평가를 부추긴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져 원자재 비용이 상승한 데다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로 기업들의 수출 실적이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10일 수출액(통관 기준 잠정치)은 162억4600만달러(약 22조3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7% 줄었다. 반면 수입액은 11% 감소하는 데 그치며 24억4300만달러(약 3조4000억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이번 달 월간 무역수지가 적자라면, 우리나라는 25년 만에 처음으로 6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중국, 일본과 달리 미국을 따라 기준금리를 꾸준히 올리고 있다는 점도 증시의 하방 압력을 높인다. 한국은행은 올 들어 6번의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중 5번의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연초 1%에 불과했던 기준금리가 현재 2.5%에 달하며, 다음 달 금통위에서 한 번에 50bp(0.5%포인트)를 올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반면 일본은 7년째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중국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우리 증시의 밸류에이션이 주요국 중 최저 수준임에도 외국계 자본이 유입될 만한 매력 요소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반도체와 전자 등 전체 증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기업들의 이익 전망이 낮아지고 있어 PER이 올라갈(주식이 비싸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상무)는 “연말로 갈수록 내년 이익에 대한 추정치가 하향 조정돼 상장사들의 PER이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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