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공기 천원 '국룰' 깬 햇반..'프리미엄' 전략 통할까
5000원 넘는 즉석밥 제품도 선보여
고가 정책에 소비자 수용할지 주목
CJ제일제당이 '프리미엄 즉석밥'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기존 백미밥도 경쟁사 대비 비싼 가격을 유지해 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3000~5000원대 고가의 즉석밥을 내놓고 있다. 백미밥의 가격 경쟁력으로 노선을 잡은 경쟁사들과의 차별화에 나서는 한편 수익성도 강화해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계획이다.
5000원 즉석밥이 나타났다
국내 소비자들에게 '밥'은 꼭 먹어야 하는 주식인 동시에 라면 다음으로 저렴해야 하는 '서민 식품'이다. 파스타 한 접시가 2만원이 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공기밥 한 공기는 1000원이어야 하는 심리 역시 이에 기인한다. 1인분에 3만~4만원을 웃도는 고기집을 가도 공기밥은 1000원이다. 햇반이나 오뚜기밥 등 즉석밥들도 할인 행사나 묶음 구매 등을 고려하면 개당 단가가 1000원 안팎이다. 흔히 하는 말로 '국룰'인 셈이다.
CJ제일제당이 최근 이 불문율에 도전장을 냈다. 지난해 프리미엄 즉석밥 '햇반솥반'을 출시했다. 버섯, 무, 계피 등을 달여내 풍미를 더한 밥물에 버섯, 연근, 고구마, 밤, 호박씨와 같은 큼지막한 원물을 넣은 '3세대 즉석밥'이다. 다양한 원물이 들어간 만큼 가격도 높다. 먼저 출시된 뿌리채소영양밥·버섯영양밥·통곡물밥은 기존 햇반의 2배가 넘는 3980원이다. 소스류가 포함되지 않은 즉석밥이 3000원을 넘긴 것은 이 제품이 처음이다.
출시 1년 만인 지난 5월에는 해산물과 육류를 넣은 프리미엄 즉석밥도 선보였다. 국내산 전복내장으로 만든 소스로 밥에 버무려 전복과 소라살을 올린 전복내장영양밥, 표고버섯을 달인 물로 밥을 지어 버섯의 향을 살리고 소고기와 우엉, 당근을 넣은 소고기우엉밥 등이다. 기존 햇반솥반보다도 1500원 오른 5480원으로 책정했다. 높은 가격에도 출시 초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햇반솥반은 출시 첫 달 매출 12억원을 올렸고 반 년 만에 90억원, 1년 만에 160억원어치를 팔았다.
CJ제일제당은 이달 초 곤약에 다양한 잡곡을 섞은 '햇반 곤약밥' 2종도 내놨다. 곤약과 천지향미를 중심으로 현미, 귀리, 흑미 등을 섞은 제품이다. 가격은 2980원으로 경쟁사들의 곤약밥보다 10% 이상 비싸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고급미인 천지향미를 사용해 다른 브랜드의 곤약밥보다 가격이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가성비' 경쟁자 너무 많네
CJ제일제당이 고가의 프리미엄 즉석밥을 내놓은 것은 백미밥이 주류를 이루는 즉석밥 시장에서 프리미엄 시장을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즉석밥 시장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기존의 백미·잡곡밥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렵다는 판단이다. 고속성장하던 즉석밥 시장이 최근 몇 년간 성장세가 주춤했다는 점도 '프리미엄'에 관심을 두는 이유다.
그간 CJ제일제당과 오뚜기가 양분해 왔던 즉석밥 시장은 최근 경쟁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2017년 '쎈쿡'으로 즉석밥 시장에 뛰어든 동원F&B는 지난해 '양반밥'을 내놓으며 리브랜딩에 들어갔다. 하림은 지난해 '순밥'으로 즉석밥 시장에 진출한 데 이어 올해 순밥을 리뉴얼한 '더미식밥'으로 재차 공략에 나섰다. 홈플러스(시그니처), 이마트(피코크) 등 대형마트와 CU(헤이루) 등 편의점, 쿠팡(곰곰), 11번가(갓반) 등 이커머스도 가격 경쟁력이 높은 PB 즉석밥을 선보였다.
신규 브랜드들이 즉석밥 시장에서 내놓는 전략은 대부분 '가성비'다. 원조 즉석밥인 햇반의 실구매가는 개당 1300~1400원 수준인 반면 업계 2위 브랜드인 오뚜기의 오뚜기밥을 비롯, 대부분의 즉석밥들은 이보다 20% 이상 저렴하다. 쿠팡의 PB 즉석밥인 '곰곰 소중한 우리 쌀밥'은 36개입 구매 시 개당 가격이 830원에 불과하다. 동원F&B가 양반밥을, 오뚜기가 식감만족을 신규 론칭했지만 이 역시 가격이 크게 높지는 않다. 가성비가 아닌 프리미엄을 강조한 후발 주자는 하림의 더미식밥 정도다.
전체 즉석밥 시장 성장세도 주춤하다. 2018년 16.1%였던 시장 성장률은 2019년 9.1%로 낮아졌고 2020년에는 7.6%, 지난해엔 2.9%로 감소했다. 시장에 중저가 브랜드가 늘어나면서 전체 매출 성장세도 꺾였다는 분석이다. 시장이 가성비 중심으로 운영되면 수익을 내는 것도 어려워진다. 많이 팔고도 남는 게 없는 장사를 할 가능성이 높다. 가성비 높은 제품들이 시장에 속속 등장하면서 햇반의 점유율도 뒷걸음질치고 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019년 70%를 웃돌았던 햇반의 즉석밥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66.9%로 소폭 낮아졌다.
우리는 '고부가가치'로 간다
오뚜기 같은 2위 브랜드와 시장에 신규 진입한 후발 주자들이 잇따라 '가성비' 전략을 들고 추격에 나서자 햇반은 고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프리미엄 시장으로 방향을 잡았다. 선도 업체의 장점을 발휘해 격차를 벌리겠다는 전략이다. 햇반은 이미 즉석밥 시장을 선도하면서 '햇반은 비싸지만 맛있다'는 프리미엄 이미지를 확보했다. 25년이나 즉석밥을 만들면서 쌓은 노하우도 탄탄하다. CJ제일제당은 햇반솥반을 개발하는 데 10여 년을 들였다고 설명했다. 1위 업체이기 때문에 가능한 투자다.
1~2인 가구가 늘고 쌀밥 소비량이 줄어드는 것도 프리미엄 밥 시장 확대의 저변이 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7.7kg이다. 햇반이 갓 출시된 1998년 99.2kg보다 40% 넘게 소비가 줄었다. 하루 평균 쌀 소비량은 158g에 불과했다. 햇반 한 공기가 210g임을 고려하면 하루에 한 공기 정도만 먹는 셈이다. 먹는 양은 줄어든 반면 소득은 크게 늘면서 한 끼를 먹어도 제대로 된 밥을 먹겠다는 '가심비' 수요도 증가하는 추세다.
가격 인상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는 점도 프리미엄 라인업의 장점이다. CJ제일제당은 올해 1분기 햇반 가격을 올린 후 거센 비판을 받았다. 쌀값이 매년 하락세인데 가격을 올렸다는 지적이었다. CJ제일제당은 플라스틱 포장 용기와 필름 등의 가격이 올랐고 밥을 지을 때 쓰는 LNG 요금도 큰 폭으로 인상됐다고 해명했지만 비판의 목소리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국민 대부분이 쌀을 직접 사서 밥을 해 먹는 만큼 '기타 원재료 가격'을 이야기하는 CJ제일제당의 입장이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비해 전복이나 소고기 등을 푸짐하게 넣은 프리미엄 즉석밥의 경우 가격이 적절한 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시장에 비슷한 경쟁 제품이 없기 때문이다. 백미밥 같은 '기본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가격이 높아도 다소 용인되는 부분도 있다. 관심있는 사람만 구매하면 된다는 전략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일반 백미밥보다 2~3배 이상 비싼 프리미엄 즉석밥이 시장에 안착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있다. 개당 가격이 경쟁사 백미밥 제품의 3~4배에 달하는 만큼 '1000원 즉석밥'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쉽사리 선택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백미밥만으로는 가시적인 차이를 만들기 어려운 만큼 다양한 원물을 사용한 프리미엄 전략은 옳은 방향으로 보인다"면서도 "기존 제품들보다 가격이 배 이상 비싼 만큼 소비자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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