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훈의 한반도톡] 김정은의 정세인식, 그리고 '핵과 함께할 결심'
중간선거·대선 등 美정세 겨냥.."시간은 우리 편, 바쁠 것 없다"
(서울=연합뉴스) 북한이 핵무기의 사용 및 관리, 개발에 대한 규정을 법제화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명확히 하겠다는 의지를 못 박았다.
지난 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핵 적수국인 미국을 전망적으로 견제해야 할 우리로서는 절대로 핵을 포기할 수 없다"고 밝혔다.
회의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라는 법령을 채택해 국무위원장의 핵무기에 대한 결정권을 명시하고 북한에 대한 적국의 무력사용의 감행 또 임박 시, 작전상 필요 등 사용조건도 규정했다.
법령에는 핵무기 전파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염두에 두고 "핵무기를 다른 나라의 영토에 배비하거나 공유하지 않으며 핵무기와 관련 기술, 설비, 무기급핵물질을 이전하지 않는다"라고도 했다.
북한의 이런 결정과 조치에는 한반도와 국제사회 정세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인식과 평가가 고스란히 담겼다.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현 국제정세는…조선반도를 둘러싼 세력구도가 명백해지고 미국이 제창하는 일극세계로부터 다극세계로의 전환이 눈에 뜨이게 가속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미국은 중국과 갈등·경쟁을 이어가며 대립하고 있고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국가들과 갈등하고 있다. 신냉전의 기운이 느껴진다.
1990년대 냉전의 붕괴와 이어지는 세계화 흐름 속에서 극도의 외교적·경제적 고립을 겪은 북한이었지만, 이런 최근 국제정세의 흐름 속에서 기댈 언덕이 생겼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응과정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 책임론을 지적하면서 추가 제재에 반대함에 따라 유엔 차원의 그 어떤 대북조치도 성사되지 않았다.
북한은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미중갈등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미러갈등 속에서 다양한 현안에서 노골적으로 중국과 러시아 편을 들고 있다.
북한은 올해 3월 유엔총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규탄 결의안이 141개국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을 때 반대표를 던졌고 지난 7월에는 우크라이나 내 친러 분리주의 세력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을 독립국으로 인정했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과 관련해 중국 공산당에 서한을 보내 "중국공산당과 중국 정부가 미국의 전횡을 단호히 물리치고 국가의 영토 완정을 수호하며 중화민족의 통일 위업을 성취하기 위하여 취하고 있는 강력하고 정당하며 합법적인 모든 조치들에 대해 전적인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인도나 사우디아라비아, 인도네시아 같은 국가들은 중간지대에서 사안별로 미국이나 중국·러시아 편을 오가면서 국익을 극대화하려는 외교노선을 견지하는 모양새다. 냉전 시기 비동맹 외교를 연상케 한다.
김 위원장은 "우리나라를 존중하고 우호적으로 대하는 자본주의 나라들과도 다방면적인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외교전"을 언급했는데 중간지대 국가들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핵을 포기하지 않고 핵보유국 지위를 이어가겠다는 북한의 이번 결정에는 미국 국내정치에 대한 판단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시간이 과연 누구의 편"이냐는 질문을 던지면서 "바쁘면 지금 적들이 바빠났지 우리는 바쁠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인민에게 들씌워지는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는데 정비례하여 우리의 절대적 힘은 계속 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으며 그들이 부닥치게 될 안보위협도 정비례하게 증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올해 연말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고 조 바이든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인 민주당의 승리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중간선거 이후에는 미국 정가는 급속히 차기 대통령 선거 국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결국 북한은 '포스트 바이든'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김정은 위원장의 정세판단 속에서 이뤄진 북한의 핵무기 보유 법제화는 앞으로 험난한 한반도 비핵화를 예고하고 있다. 신냉전의 부활 조짐이 한반도 상황을 풀기 더 어려운 고차방정식으로 인도하고 있다.
한국 정부로서는 한층 더 무거운 짐을 떠안게 된 셈이어서 윤석열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 등을 계기로 새로운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j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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