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 안 되니 넘쳐나는 무순위 청약.. "9월만 21곳 모집"
분양시장 분위기가 냉랭해지면서 무순위 청약을 진행하는 곳이 늘고 있다. 무순위 청약은 특별공급과 청약 1순위, 2순위까지의 일반청약을 마치고 남은 물량을 모아 추가로 모집하는 청약이다.
무순위 청약은 지난해만 해도 물량이 많이 나오지 않았던데다 ‘로또’라고 인식되며 과열양상을 보였다. 신축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당첨만 되면 큰 시세 차익을 누릴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쟁률이 수백대 1을 기록하는 단지가 속출했다. 인천 연수구 ‘힐스테이트 레이크 송도3차’의 무순위 청약 경쟁률은 474.1 대 1, 화서역푸르지오브리시엘 무순위 청약 경쟁률은 422대 1이었다.
그러나 9월에 진행되는 무순위 청약은 21건에 달한다. 9월 한달간 이뤄지는 본 청약이 27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본 청약 못지 않게 무순위 청약이 많은 셈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청약시장에서 입지나 상품성에 따른 옥석 가리기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무순위 청약도 무주택자만 참여할 수 있는 것으로 제도가 바뀐 영향까지 더해져 분양을 받으려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13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이날 하루에만 총 11건의 무순위 청약이 공고됐다.
서울에서는 관악구 신림로 185 일대에 지어진 신림 스카이 아파트 4가구가 무순위 청약으로 나왔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9월 청약을 진행했는데, 당시 43가구 중 27가구가 무순위 청약으로 나온 바 있다. 전체 물량의 62%가 무순위 청약으로 흘러나온 셈이다.
이 단지의 청약 경쟁률은 246대 1이었다. 상당한 경쟁률에도 당첨자가 청약통장을 사용할 기회를 써버린 상황에서도 당첨된 아파트를 포기한 것이다. 여기에 청약 가구 수의 500%를 선정한 대기인원으로도 계약자를 채우지 못했다.
인천시 연수구의 송도럭스오션 SK뷰도 지난 5월부터 무순위 청약을 진행 중이다. 이번 모집 가구 수는 4가구로 지난달 무순위 청약 때와 같다. 지난달 무순위 청약에서도 받아간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그 밖에도 경기도 부천시 소사역 한라비발디 프레스티지(4가구), 충남 천안시 두정동 일대에 들어서는 유보라 천안 두정역(280가구), 전북 전주 효자 엘르디움 에듀파크 아파트(40가구) 등이 무순위 청약을 진행한다.
이렇게 무순위 청약이 계속 나오는 것은 분양시장이 실수요자 중심 시장으로 바뀐 가운데 이들이 주택 매수를 미루며 관망세로 돌아선 결과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5일 기준 이번주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80.9를 기록했다. 지난주 81.8보다 0.9포인트 하락했다. 지난 2019년 7월 1일 80.3을 기록한 이후 3년 2개월 만에 가장 낮다. 매매수급지수는 기준선인 100보다 낮을수록 시장에 집을 팔려는 사람이 사려는 사람보다 많다는 뜻이다.
입지나 가격에서 확실하게 장점이 있는 아파트가 아닌 이상 굳이 분양받기 보다는 구축 아파트 급매물을 사겠다는 사람이 는 것도 청약 인기를 식게 만든 요인이다. 여기에 최근 분양시장은 다주택자가 참여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도 청약 인기를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무순위 청약의 경우 무주택자 위주로 제도가 바뀐 영향도 받고 있다. 과거에는 무순위 청약에 유주택자가 참여할 수 있었다. 이젠 무순위 청약을 신청하려면 무주택 세대주, 만 19세 이상 성인, 해당 주택건설지역 거주자 등의 조건을 모두 갖춰야 한다.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청약시장 과열을 우려하며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안을 개정‧공포한 데 따른 것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면서 분양시장에서 소화 안된 물량이 무순위 청약으로 흘러들어오고, 주인을 찾지 못해 무순위 청약이 반복되는 일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금리 인상 등의 영향으로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면서 무순위 청약에 대한 관심 역시 줄고 있다”면서 “입지와 차익 기대액 등을 살피는 옥석가리기가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 무순위 청약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건설업계는 무순위 청약 시장에 대한 참여 제한이 지나치다면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실수요자에게 기회가 돌아갈 만큼 돌아갔다면 그 이후로는 투자자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면서 “부동산 시장에 과열 양상을 보였을 때와 지금 상황은 다르다”고 했다.
다른 의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업계 부동산 전문가는 “무순위 청약이 반복되는 일이 많아지겠지만 근본적으로 경쟁력 없는 입지에 비싼 분양가가 문제라서 실수요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것”이라면서 “작년에 개정한 제도를 다시 바꾸는 것보다는 분양가를 낮추는 등 다른 방안을 찾아 이 물량을 해소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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