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가 최태웅의 '기본기' 회귀 선언.."한국 배구는 실패했다"

이준희 2022. 9. 1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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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한 인터뷰]'찐'한 인터뷰│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이 2일 오후 충남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복합베이스캠프에서 자세를 잡고 있다. 천안/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최태웅(46) 현대캐피탈 감독은 개혁가다. 7년 전 사령탑에 깜짝 발탁된 그는 ‘스피드 배구’라는 최태웅표 철학을 앞세워 리그 판도를 바꿨다. 당시는 빠른 공격보단 정확한 공격을 추구하는 게 정석인 시대였다. 초보 감독이 내건 이정표에 우려도 따랐지만, 그는 “성적이 나지 않더라도 스피드 배구는 포기할 수 없다”며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2022년. 최 감독은 8월 전남 순천에서 열린 프로배구 컵대회(코보컵)에서 “기본기”, “복고풍 배구” 같은 단어를 꺼냈다. 사람들은 이를 ‘수비 배구’ 회귀 선언으로 이해했다. 이미 빠르고 공격적인 배구가 자리 잡은 시대와 다소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들렸다. 과거 자신이 추구했던 스피드 배구에 대한 신념이 바뀐 걸까. <한겨레>는 2일 충남 천안에서 최태웅 감독을 만났다.

기본이 탄탄해야 공격도 할 수 있다

혁신과 성공. 개혁가 최태웅이 이끄는 현대캐피탈은 강했다. 2015∼16시즌을 앞두고 선수에서 사령탑으로 직행한 그는 V리그 최초로 데뷔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비록 챔피언결정전에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긴 했지만, 최 감독은 이어진 2016∼17시즌 챔피언 자리까지 오르며 구단에 10년 만의 챔프전 우승컵을 안겼다. 배구 명가의 부활이었다.

하지만 최근 현대캐피탈이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지난 시즌 현대캐피탈은 7개 구단 중 7위를 기록했다. 이번 코보컵도 3패로 조기 탈락이다. 외국인 선수 부상 등 악재가 있었다. 세대교체 시기라는 특수성도 있다. 하지만 ‘현대 왕조’를 꿈꿨던 입장에선 만족할 수 없는 성적이다. 이런 상황에 최 감독이 기본기 강화를 들고나오자 일각에선 뜬금없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이제 개혁가 최태웅은 사라진 걸까. 그는 ‘스피드 배구를 포기한 것이냐’는 질문에 단호히 “아니다”라고 답했다. 최 감독은 오히려 “기본 기술이 탄탄한 팀이 돼야 스피드 배구도 하고, 서브를 더 강하게 하는 등 요즘 추세에 맞는 배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강한 서브는 필연적으로 범실을 동반하기 때문에, 기본기 강화를 통해 다른 범실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현대캐피탈 선수들이 2016년 2월25일 2015~2016 V리그 남자부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한 뒤 최태웅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안산/연합뉴스

지난 10년, 한국배구는 실패했다

최 감독의 결심. 그 이면엔 냉철한 현실 인식이 있다. 최 감독은 “지난 10년간 한국배구는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배구가 세계 흐름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기본기가 갖춰져 있지 않은 선수들이 프로에 올라오기 시작하고, 화려한 것만 보고 자란 선수들은 기본조차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와 달리 프로 선수들조차 기본기 훈련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실패 원인은 뭘까. 그는 “아마추어 지도자들의 실력을 논하는 건 절대 아니다”라고 했다. 그렇다고 “엠제트(MZ) 세대 특징 같은 세대의 문제도 아니다”라고 했다. 최 감독은 “지금 학교는 배구팀을 유지해야 하고, 성적도 내야 한다”며 “선수들을 데려와서 자리를 채워야 하는데, 훈련을 많이 시키면 나가니까 달래서 시키고 그런 악순환이 있다”고 했다.

최 감독은 또 “지금 기본기부터 가르친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했다. 다만 “그렇다고 이걸 포기할 수는 없다”고 했다. 실제 현대캐피탈은 최고참 선수들까지도 “무릎이 까져가며” 기본기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우려 속에서도 스피드 배구를 밀어붙이던 개혁가 최태웅은 그대로였다. 달라진 상황에 맞춰 다른 처방을 내렸을 뿐이다.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이 선수들에게 지시를 하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난 배구에 미친 사람…깊이 없는 배구 안돼

부담도 있다. 기본기 강화는 바닷속을 헤매는 일과 같다. 실체가 눈에 잡히지 않는다. 최 감독은 “눈으로도, 데이터로도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며 “솔직히 막막하다”고도 했다. 다만 그는 “남들이 갖추기 귀찮아하는 걸 갖춰야 한다. 범실 하나를 더 잡아서 점수 1점을 더 보탤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프로는 결국 성적으로 말해야 한다. 최 감독은 “100% 동의한다”면서도 “명문으로서의 깊이가 없는 팀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는 “우승을 해도 제대로 된 팀과 마인드로 하고 싶다”며 “연속성과 지속성을 가진 팀을 만들고 싶다”고도 했다. “외국인 좋아서 한 번 우승하고, 선수가 좋아서 한 번 우승하는 팀으로 남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다.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이 2일 오후 충남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복합베이스캠프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안/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프로 구단 사령탑 7년. 더는 초보 시절처럼 ‘무한 긍정’ 태도로 임할 수 없다. 숙명처럼 따라오는 부담감 때문이다. 다만 그는 “그런 부담감을 버텨낼 수 있는 힘도 생겼다”고 했다. 굳은살이 배긴 셈이다. 최 감독은 “나는 내 철학에 맞춰가는 스타일”이라면서도 “이상적인 건 필요 없다. 철학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내 일”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최근엔 “먹고 자는 시간 빼고 배구만 본다”고 한다. 그가 몽상가가 아닌 개혁가로 불리는 이유다.

“나는 배구쟁이다. 나처럼 배구에 미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한국배구가 발전할 수 있다면 뭐든 도전하고 싶다”는 최태웅 감독. 그의 바람처럼 한국배구는 부흥할 수 있을까. “2년 동안은 팬분들이 봐줬다고 생각한다. 이젠 세대교체 같은 단어를 꺼내선 안 되는 시기다. 핑계는 싫다. 성적으로 보답하겠다”는 그가 올 시즌 보여줄 배구에서 희망의 조각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천안/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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