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하고 설사, 식은땀"..난중일기 속 이순신 '이 병' 앓았다

안정준 기자 2022. 9. 1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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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주)빅스톤픽쳐스)

#병신년 3월 17일. 저녁 나절에 나주 판관이 보러왔기에 술에 취하도록 먹여보냈다. 이날 밤에 식은 땀이 등을 적셔서 옷 두겹이 다 젖고 이부자리까지 젖었다. 몸이 불편했다.

#병신년 3월 21일. 초경에 토사곽란(吐瀉藿亂, 위로는 토하고 아래로는 설사하면서 배가 아픈 병)이 나서 한참 구토를 했는데 자정에 조금 가라앉았다. 앉았다 누웠다 뒤척이며 공연한 고생을 하는 것 같아서 매우 한스럽다.

#정유년 12월 1일. 아침에 경상 수사 이입부가 진중에 왔다. 나는 복통을 앓아 늦게 수사를 만나고 그와 함께 이야기하며 종일 대책을 논의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조선의 승리로 끝낸 영웅 이순신. '철인' 처럼 보이는 그가 사실은 상상을 초월하는 강한 압박감과 격무, 스트레스로 크고 작은 건강상 문제를 겪고있었다. 그가 남긴 난중일기에는 이 같은 건강 문제가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가정의학과 임지선 전문의는 13일 난중일기 기록으로 미루어 당시 이순신은 위장염, 수면 장애, 불면증, 다한증, 총상과 고문에 의한 어깨·척추·무릎 통증 등을 앓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영화 '한산'의 배경인 한산대첩을 치를 당시 이순신은 전라좌수사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기에는 수 차례 관직 등용과 박탈이 반복됐고, 전란 중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 이런 스트레스 상황에서 발현될 수 있는 질병이 '신경성 위장염'이다. 생사 기로에서 잠을 제대로 못 자면 면역력이 저하되며 걱정,불안은 소화기능을 떨어뜨린다. 난중일기에는 잦은 복통과 토사곽란, 식사를 제대로 못할 정도의 고통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

임 전문의는 "위염과 장염이 함께 동반하는 위장염은 바이러스가 원인이지만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성 위장염 비중도 크며 속쓰림, 더부룩함과 미식거림, 잦은 트림과 구토증상이 생긴다"며 "과민성 대장 증후군은 잦은 설사의 양상으로 생길 수 있으며 위궤양이 급성으로 발현되면 토혈 및 혈변 등의 증상도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신경성 위장염은 재발이 쉬워 만성으로 발전할 수 있는데, 과로와 스트레스로 잦은 음주까지 한다면 증상은 더 악화된다. 난중일기에는 "광주 목사가 찾아와 아침 식사 전 술을 마시기 시작해 결국 식사도 하지 않은 채 취했다"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를 유추해 보면 그의 위장병 증세가 가볍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신경성 위장염은 현대인도 흔히 겪는 대표적 질환이다. 위장 기능은 자율신경계 지배를 받는데, 자율신경계가 스트레스, 우울 및 불안감으로 자극을 받으면 위장 운동기능 문제로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식습관 관리가 필요하며 잦은 음주, 폭음은 피해야 한다.

난중일기에는 잠에 잘 들지 못했다는 내용도 있다. 왜군은 파죽지세로 한반도를 유린하고 임금은 도성을 버리고 몽진을 떠난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수면장애와 불면증이 반복됐다면 자율신경실조증을 겪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자율신경실조증은 우리 몸이 내분비계와 심혈관, 호흡기, 소화기 등 신체 전반의 기능 조절과 신체 항상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다.

자율신경실조증 증상은 수면장애와 불면증, 신경과민, 두통, 구토 등 다양하다. 가장 큰 원인은 역시 과도한 스트레스다. 또한 백의종군 직후 모친의 부고와 전쟁 후반부 아들의 죽음에 따른 정신적 충격과 고통 역시 그의 병의 근원이 되었을 것이다.

난중 일기에 나온 식은땀과 관련된 내용도 이순신의 건강 상태를 가늠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흔히 식은땀은 대부분 일시적 현상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그가 겪었을 극도의 압박감과 정신적 스트레스, 육체적 피로 등 본인의 몸 상태에 대해 기록했던 내용을 감안하면 수면 무호흡증, 갑상선 질환, 불안 장애 등도 의심해 볼 수 있다. 게다가 식은땀과 관련된 기록은 난중일기에 수차례 반복돼 나온다.

또 이불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을 많이 흘린 것으로 미루어 다한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다한증은 필요 이상으로 보통 사람보다 땀을 많이 흘리는 증상인데, 선천적인 요인도 있지만 갑상선 이상, 당뇨, 결핵 등의 기저 질환으로 인한 이차적 다한증도 많은 편이다.

임 전문의는 "다한증은 대인 관계나 사회 생활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는데 바르는 약과 주사 치료를 병행 할 수 있으며, 증상이 호전되지 않으면 땀을 분비하는 부위의 교감 신경을 절제하는 수술을 고려해 볼 수 있고, 약물과 주사치료, 수술 치료 등 정확한 치료 방침에 대한 상담은 흉부외과 전문의 상담을 권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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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준 기자 7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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