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英 여왕 서거와 제왕적 대통령제 성찰

기자 2022. 9. 1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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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조지 6세의 급작스러운 별세로 등극한 후 70년간 영국민의 정신적 기둥이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8일 서거했다.

그동안 많은 스캔들이 엘리자베스 2세의 인기로 극복됐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8630만 파운드(약 1392억 원)의 국민 세금을 쓰는 왕실이 앞으로 품위와 매력을 상실한다면, 군주제에 대한 영국 국민의 지지는 하락할 것이다.

엘리자베스 2세의 뿌리인 조지 1세는 독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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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두 연세대 일반대학원 지역학협동과정 교수

아버지 조지 6세의 급작스러운 별세로 등극한 후 70년간 영국민의 정신적 기둥이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8일 서거했다. 군주제는 반대하지만 여왕을 좋아하는 시민은 많다. 그리고 세계적인 애도의 물결은 그가 영국의 진정한 소프트파워였음을 말해준다. 그는 과거 식민지 국가들을 방문하며 사과 외교를 통해 영국의 이미지를 크게 쇄신했다.

후임자인 찰스 3세의 부담이 매우 크다. 무엇보다 가족의 통합이 절실하다. 그동안 많은 스캔들이 엘리자베스 2세의 인기로 극복됐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8630만 파운드(약 1392억 원)의 국민 세금을 쓰는 왕실이 앞으로 품위와 매력을 상실한다면, 군주제에 대한 영국 국민의 지지는 하락할 것이다.

사회적 통합도 중요한 과제다. 오늘날 영국 사회는 다인종·다종교화하고 있다. 영국의 국왕은 종교의 수장을 겸하고 있다. 국교인 성공회 신앙을 수호하는 동시에 이민족의 종교도 포용하는 풍모를 보여야 한다. 영국은 국내외적인 균열 위기를 안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스코틀랜드가 분리독립을 추구하고, 외부적으로는 56개 국가로 구성된 영연방의 결속력이 약해지고 있다. 그동안 엘리자베스 2세는 겸손한 권위로 영국의 모든 통합을 지키는 데에 성공했다.

엘리자베스 2세의 뿌리인 조지 1세는 독일인이다. 후사가 없었던 영국 앤 여왕과 가장 가까운 핏줄이라는 이유로 1714년 54세에 왕위를 이어받은 하노버 공작이다. 그는 영어를 할 줄 몰랐고, 영국에서는 의회 승인이 없으면 과세도 인신구속도 국왕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래서 정치는 총리에게 위임하고 매년 고향을 찾아 시간을 보냈고, 그의 묘지도 독일에 있다.

유럽에는 영국 외에도 많은 왕국이 있다. 이들 왕정이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것은, 국왕은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 입헌군주제이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총리의 실질적 통치와 국왕의 상징적 권위라는 이원 구조로 돼 있다. 국왕은 국가원수로서 국민을 대표하고, 행정부의 수반은 의회 다수당 출신 총리가 맡는다. 이런 원리는 내각책임제로 자리 잡았다. 그 반면,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이 국가원수인 동시에 행정부의 수반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정치적 중립을 요구받지만,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여당과 긴밀히 당파적으로 협의해야 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건국 이후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강하지만 불행했다. 1인은 망명, 1인은 피살, 4인은 투옥, 1인은 자살, 1인은 탄핵됐다. 이처럼 대통령이 불행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막강한 권력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갈 필요가 있다. 가장 현실적인 개선 방안은 개헌 없이 권력 분산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현행 헌법은 이미 총리에게 장관 임명제청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주고 있다.

그동안 사문화한 책임총리 조항을 살리기 위해서는 대선에서 정·부 후보가 함께 출마하도록 선거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만일 총리가 러닝메이트로서 대통령과 함께 국민의 선택을 받는 절차를 거친다면, 총리의 임기와 권한을 보장하는 효과가 생길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은 총리에게 행정권을 넘겨주는 만큼, 초당적인 국민통합에 매진할 수 있고 국민적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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