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태풍 '최대 보상'이 능사는 아니다

기자 2022. 9. 1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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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학과

추석 연휴에도 힌남노 생채기

태풍은 숙명인데 대응은 부실

일기예보는 절박한 방재 정보

정부·지자체 노력 중요하지만

개인 책임 중요성도 자각해야

보상제도 근본적 개편 나설 때

추석 연휴가 끝났지만, 그전에 제주·통영·부산·울산·포항을 거칠게 할퀴고 지나간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생채기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기상청이 예보했듯이 중심기압은 ‘사라’ ‘매미’에 버금가는 역대급이었다. 그러나 육지에 상륙하면서 진행 속도가 갑자기 빨라져서 피해는 크게 줄었다. 그래도 3년 만의 즐거운 명절을 기대하던 주민들에게는 날벼락이었다. 포스코의 고로 3기가 되살아나는 건 다행이다. 주민들도 속히 일상을 되찾아야 한다.

서태평양에 위치한 우리에게 태풍은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기상관측을 시작한 1904년 이후 무려 371개의 태풍이 한반도를 지나갔다. 매년 3.1개의 태풍이 찾아온 셈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대응은 여전히 어설프고 실망스럽다. 요행을 바라면서 경고를 무시하고, 피해의 책임을 남의 탓으로 돌린다. 아파트 관리소장과 10년 전의 하천 정비 사업이 도마 위에 올랐다.

태풍은 태평양의 강한 상승 기류 때문에 발생하는 자연현상이다. 아무리 무위자연을 외치더라도 재앙적인 태풍을 반길 수는 없다. 태풍은 피해만 남기는 게 아니다. 지구 대기 중의 에너지 분포를 정상화해주고, 누적된 오염을 해소해주는 순기능도 있다.

우리에게 태풍은 주로 여름에 찾아오는 불청객(不請客)이다. 그런데 매년 평균 25개 이상의 태풍이 발생하는 북태평양의 사정은 다르다. 여름철인 6·7·8월에 대략 10개의 태풍이 집중된다. 그리고 9·10월에도 9개나 발생한다. 심지어 겨울·봄에 발생하는 태풍도 있다. 태풍이 발생하는 시기와 지역이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힌남노’가 북위 28.5도에서 발생한 가을 태풍이었다고 호들갑을 떨 이유가 없다. 가을 태풍이 더 강하다는 주장도 과학적 근거를 찾기 어려운 것이다.

강한 비바람을 동반한 태풍은 반경이 100㎞를 넘어설 정도로 거대하고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그 중심도 끊임없이 이동하고, 중심기압·풍속·강수량도 수시로 변한다. 그런 태풍에 대한 정보는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태풍에 대한 우리의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 경험이나 통계적 분석은 섣불리 믿을 게 아니다. 태풍의 빈도·강도·피해에서는 어떠한 통계적 경향성도 찾아보기 어렵다. 태풍 진로의 왼쪽에 해당하는 ‘가항(可航)’ 반원이 언제나 안전한 것도 아니다. 기후변화 때문에 더 강력한 태풍이 더 자주 발생한다는 주장도 통계적으로는 여전히 섣부른 것이다.

기상청의 슈퍼컴퓨터가 태풍 예보의 정확성을 보장해 주는 건 아니다. 그런데 아마존 밀림의 나비 날갯짓이 베이징(北京)에 거대한 태풍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 기상 현상이다. 대기의 움직임이 극단적인 비평형·비선형 상태이기 때문이다. 결국, 태풍의 강도와 진로 및 영향권에 대한 완벽한 예보는 현대 과학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무작정 기상청을 탓할 일이 아니다.

기상청이 알려주는 ‘예보원(豫報圓·예상 진로도의 파선으로 나타낸 원)’이 예보의 불확실성을 나타내는 과학적인 방법이다.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앙상블 수치해석에서 얻어지는 예보원 안에 태풍의 중심이 들어가면 그런 예보는 충분히 정확한 것이다. 예보원의 존재를 철저하게 무시하는 언론의 잘못된 관행은 바로잡아야 한다. 예보원의 중심을 연결한 ‘예상 진로’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어리석은 것이다.

일기예보는 단순한 생활정보가 아니다. 오히려 태풍·폭우·폭설·해일과 같은 극한 기상에 의한 재앙적인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절박한 방재(防災) 정보다. 그래서 최악의 상황을 알려주는 과잉 예보를 무작정 탓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기상청이 양치기 소년이 되어서는 안 된다.

태풍을 비롯한 자연재해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방재 노력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의 방재 노력이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다. 자연재해의 엄중함을 겸허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남이 내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것이라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 방재에 대한 개인의 책임도 무겁다는 말이다. 목소리를 키울수록 정부의 보상이 커진다는 잘못된 기대가 국민을 비겁하게 만든다. 재난 피해에 대한 보상 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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