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친구들 이어준 한국 야구 매력, 미국서도 못 잊어 [나와 너의 야구 이야기 25]

한겨레 2022. 9. 1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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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의 야구 이야기]

2019년 3월23일, 두산과 한화의 개막전이 열린 잠실야구장에서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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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여름 한국을 떠난 이래로 미국 미시간에서 산 지 3년 차다. 시공간이 주는 제약 탓에 예전처럼 한국야구를 마음껏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에게 야구는 아주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충청도 출신의 아버지는 1985년 이래로 40년 가까이 한화 이글스 팬이고, 어머니는 박철순의 외모에 반해 40년째 두산 베어스 팬이다. 나는 1998년 현대 유니콘스 팬으로 시작해서 유니콘스가 해체된 이후 2008년 베어스 팬으로 넘어왔다. 어머니가 두산 팬인 것과 더불어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구장이 잠실구장이라서 나도 모르게 두산을 고른 건지도 모르겠다.

2010년 대학에 입학한 후 본격적으로 야구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2013~19년은 진짜 야구에 미쳐서 시즌에는 야구만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졸업반이던 2016년에도, 인턴이나 대학원 생활하면서 취업 준비를 하던 2017, 2018년에도 10번 이상 야구장을 갔으니까. 2019년에는 한국을 떠나기 전 4번은 직관을 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직관들은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했던 야구장 나들이였다.

맨 처음 외국인 친구를 데리고 경기장에 간 날은 2016년 5월5일 두산과 엘지(LG)의 잠실 더비였다. 슬로베니아에서 온 아이다를 데리고 잠실구장 3루석에서 같이 두산을 응원했다. 경기는 연장 접전 끝에 두산이 7-8로 1점 차 석패를 당했지만, 함께했던 아이다는 나에게 “한국의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한국 야구장은 또 하나의 페스티벌 공간 같다”고 말했다.

2016년 9월20일 두산과 삼성의 경기가 열리기 전 잠실야구장에서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와 함께 찍은 사진. 본인 제공

두산이 정규리그 우승까지 매직 넘버 2를 남겨놓았던 2016년 9월20일에는 고교, 대학 동창 및 그의 친구인 일본인 지인들을 데리고 잠실구장에 갔다. 두산과 삼성의 경기를 봤는데 야구장에서 두산 유니폼을 입은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를 발견하고 사진 촬영을 요청해서 한컷 찍기도 했다. 그날 함께한 일본인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했던 얘기는 “일본에도 응원단장과 치어리더가 있지만, 한국의 응원이 훨씬 더 조직적이고 한국 팬들의 응원이 훨씬 더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친다”였다.

두산이 2018년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 짓고 시즌 막바지가 됐을 때는 크리스티안과 카타리나라는 독일인 친구들을 데리고 잠실구장에 갔다. 연장 10회말 1사 1, 2루, 내가 제일 좋아했던 박건우가 윤석민(KIA)을 상대로 좌측 담장을 넘기는 끝내기 홈런을 날렸을 때 나는 독일인 친구들을 끌어안고 한참 동안 소리를 지르며 기쁨을 만끽했다. 야구장에서 끝내기 홈런을 처음 봤고, 더군다나 박건우가 날린 홈런이라 더 방방 날뛰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독일인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유럽에서 축구 경기할 때는 때때로 양 팀 서포터즈들끼리 다소 난폭하고 거칠어지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꽤 있다. 한국의 야구장은 그라운드에서 치열한 승부를 펼치면서도 양 팀 팬들이 난폭하거나 거칠 거나 폭력적이지 않고 경기 자체를 신나게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국의 색다른 매력과 멋을 야구장에서 발견했다.”

두산 베어스 시절의 박건우(현 NC 다이노스). 연합뉴스

2019년에는 아예 대규모로 외국인 학생들을 모집해 두산과 한화의 개막전이 열린 잠실구장으로 ‘단관’(단체관람)을 갔다. 당시 나는 대학원 조교로 활동 중이었고, 외국인 학생들과 함께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는데, 총 80명을 데리고 야구장에 갈 수 있었다. 유럽에서 온 학생들이 많다 보니 야구는 처음 접한 친구들이 많았다.

야구가 낯선 이 친구들에게 야구의 매력을 보여준 선수가 두산 외국인 타자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였다. 외국인 친구들은 “두산의 페르난데스~, 두산의 페르난데스~, 두산의 페르난데스~. 안타를 날려버려 날려버려 페르난데스~!”라는 응원가에 맞춰 박수를 치고 몸을 흔들고 있는 힘껏 목소리를 냈다.

페르난데스가 세번째 타석에서 1타점 적시타를 때려내고, 네번째 타석에서는 그날 경기 결승타가 된 좌익 선상 쪽 2타점 2루타를 때려내자 외국인 친구들도 마치 예전부터 야구를 봐왔고 즐겼던 것처럼 박수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두산 베어스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 연합뉴스

이때의 응원 분위기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날 나와 함께 단관을 갔던 외국인 친구들은 대체로 “한국 야구장에는 직접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한국만의 색다른 매력이 있다”, “유럽의 축구장은 비장한 전쟁터 같은 분위기라면 한국의 야구장은 모든 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페스티벌 같다”, “한국 야구장의 제일 큰 매력은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맛있는 것 먹으면서 신나게 즐길 수 있는 분위기에 있다”는 말을 했다.

나는 아직도 KBO리그 야구장의 매력을 잊지 못한다. 미국에 와서 시카고의 리글리 필드, 게런티드 레이트 필드, 디트로이트의 코메리카 파크에서도 직관했지만 KBO리그에서만 맛보고 느낄 수 있었던 그 분위기가 가끔 그립다.

나에게 또 다른 소원이 있다면 현재 교제 중인 이라크계 미국인 여자친구와 함께 언젠가 같이 한국으로 가서 잠실구장에 같이 가는 것이다.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두산 베어스를 응원하면서 KBO리그의 생동감을 여자친구에게 보여주고 싶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조만간 그 소원을 이루게 되리라 오늘도 기도한다.

마르티넬리(미국 미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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