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지막 내연기관차는 무엇일까

서울문화사 2022. 9. 13.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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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에는 친환경차가 더 많아질 거다. 전기차 보급률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금 내연기관차를 구입한 오너들은 아마도 다음에는 전기차를 구입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연기관차를 구입할 수 있는 시기는 지금이 마지막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갖고 싶은 자동차를 고백한다.

MOTOR 01 포르쉐 - 718 박스터 GTS 4.0

어쩌면 운명이었다. 국내 기자 중, 아니 우리나라 그 어떤 이보다 먼저 만나 시트 위에 몸을 포갰다. 시동을 걸었을 때 등 뒤에서 다가오는 진동과 엔진음은 귀를 간지럽힐 뿐 아니라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을수록 진동은 누그러졌고, 소리는 더 앙칼지게 변했다. 4000cc의 고회전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은 달리고 있어도 더 달리고 싶어지는 묘한 이끌림이 있었다. 힘이 뿜어내는 과정을 생생하고 짜릿하게 전달하는데 정말이지 온몸의 세포가 감각의 문을 열어놓은 것 같았다. 그때부터 시작됐다. 718 박스터 GTS 4.0에 대한 나의 사랑앓이가. 그리고 한 가지 결심했다. ‘이 차를 기필코 손에 넣어야겠다.’ 8년간 자동차 전문 매체에 있었기에 탈것에 감흥이 크지 않다. 한 달에 적게는 5대, 많게는 15대의 차에 몸을 싣고 하루에 짧게는 20km, 길게는 400km를 달린다. 당연히 감흥이 없을 수밖에. 그렇기에 718 박스터 GTS 4.0를 갖고 싶다는 다짐이 참 낯설었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718 박스터 GTS 4.0에 대한 나의 열애는 지칠 줄 몰랐다. 한국에 정식으로 들어왔을 때도 어떤 매체보다 빠르게 만났고 어떤 차보다 열심히 탔다. 2박 3일 동안 주유를 세 번이나 할 정도로 달리고 또 달렸다. 소월길, 북악스카이웨이, 중미산, 평화의댐 등 내 머릿속에 있는 모든 드라이브 코스를 달리면서 내가 ‘금사빠’가 아님을 깨달았다. 친환경과 전동화 시대를 맞이하는 지금, 고회전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은 반사회적인 선택이 분명하다. 친환경론자가 기름을 도로 위에 퍼붓고 다니냐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겠다. 718 박스터 GTS 4.0과 함께라면 그런 비난도 내 일부라 여기며 살아갈 것 같다. 지금 고회전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들은 하나둘 단종을 맞이하고 있다. 718 박스터 GTS 4.0을 구매할 기회가 점점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하루라도 빨리 계약서에 사인해야 하지만 글을 써서 포르쉐를 산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하다. 무턱대고 질렀다간 마지막 내연기관차가 아닌 마지막 자동차가 될 수도 있다. 내 자금 상황이 718 박스터 GTS 4.0이 단종하기 전에 꼭 나아지길 바란다. 그냥 바라보고 꿈꾸는 것으로 남겨두기엔 718 박스터 GTS 4.0은 너무나 매혹적인 존재다.

WORDS 김선관(프리랜스 에디터)

MOTOR 02 푸조 - 308

극도의 현실주의자로서 마지막 내연기관차를 꼽자면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운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해치백이 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푸조의 신형 308은 절묘한 시점에 등장해 시선을 집중시킨다. 308은 푸조의 1백30여 년 자동차 제조 노하우를 집약한 C-세그먼트 해치백이다. 특히 오랫동안 푸조가 월드 랠리 챔피언십과 내구 레이스 등의 모터스포츠에서 다져온 실력을 그대로 반영해 주행 성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이유로 실제 운전을 즐기는 자동차 전문 기자 가운데 푸조 해치백을 타는 사람이 적지 않다. 국내에 발을 디딘 새 308은 최고 131마력의 1.5L 디젤 엔진을 탑재했다. 하지만 디젤 엔진은 이미 친환경 트렌드에 따라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푸조의 디젤 엔진은 독일 브랜드보다 완성도가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많은 자동차 제조사를 괴롭혔던 디젤 게이트 속에서도 별다른 논란이 없을 정도였으니 더 할 말이 있을까? 게다가 17.2km/L의 높은 연료 효율은 초고유가 시대에도 무난히 버틸 수 있도록 돕는다. 308의 외모는 요즘 물오른 푸조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따른다. 특히 날렵한 인상을 완성하는 LED 램프와 예리한 선들로 구성한 몸매는 보기에도 좋고 높은 하차감을 선사한다. 준중형급 차체는 크기가 부담스럽지 않아 도심 주행에서도 뛰어난 기동성을 기대할 수 있다. 실내는 비행기 조종석을 닮은 운전석 구조를 갖춰 운전에 대한 집중도를 높인다. 그러나 세련된 디자인과 앰비언트 라이트, 공기정화 시스템, 마사지 시트, 커넥티비티를 강조한 편의 사양, 그리고 운전자 보조 시스템은 달리기와 실용성에만 집중했던 푸조가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비록 우리나라에서 ‘푸조’의 브랜드 파워는 낮지만 타면 탈수록 기쁨을 주는 ‘308’의 매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걸걸한 디젤 엔진음도 이제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더 구수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WORDS 구기성(<오토타임즈> 기자)

MOTOR 03 현대 - 벨로스터 N

운전할 때의 손맛은 스티어링 휠을 통해 전달되는 말초적인 짜릿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수동변속기의 동그란 레버를 여기저기로 빠르고 정밀하게 찔러 넣는 감각까지 더해야 섬뜩한 드라이빙 쾌감이 완성된다. 그런데 전기차는 변속기가 없다. 감속기만 있다. 변속기가 있는 극소수의 모델도 해봐야 2단까지다. 전기차에 수동변속기 모델이 나올 리 없다. 그래서 난 현대 벨로스터 N을 내 마지막 내연기관차로 선택했다. 수동변속기 모델로. 마지막 내연기관차라면 내연기관차의 감성을 충만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벨로스터 N은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퍼포먼스 모델 중 유일하게 수동변속기를 넣을 수 있다. 토요타 GR86도 수동변속기를 지원하지만 출력을 알뜰하게 끌어 쓰는 성향이 나와는 딱히 맞지 않는다. 나는 ‘핫 해치’ 특유의 명민하고 옹골지며 당찬 감성에 더 끌린다. 벨로스터 N 정도면 트랙이나 와인딩에서 충분한 재미를 야무지게 느낄 수 있다. 탄탄하고 치밀하게 조인 섀시는 차체가 조밀하게 뭉쳐진 덩어리 같은 느낌을 준다. ‘벨 N’을 강하고 단호하게 채근할 수 있는 건 그래서다. 발목을 확 비틀어 힐 앤 토(Heel and Toe)도 사용할 수 있다. 클러치가 있는 수동변속기 자동차에서만 즐길 수 있는, 어렵지만 화끈한 재미다. 힐 앤 토가 어색하다면 스스로 엔진 회전수를 맞춰주는 레브 매칭(Rev. Matching)을 사용하면 된다. 머리칼이 바래고, 관절이 좀 뻣뻣해도 트랙에서 변속하는 맛이 난다. 조금은 과장된 배기음도 좋다. 벨로스터 N은 직렬 4기통 2.0L 터보 엔진의 어쩔 수 없는 배기음을 전자식 사운드 제너레이터로 꾸민다. 그래서 V8 자연흡기 엔진의 배기음을 어색하게 치장한 느낌이 든다. 팝콘이 너무 자잘하게 튀겨진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나이 든 아저씨의 철 지난 감성팔이일 수 있다. 아날로그 인간의 독단적인 감수성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내가 좋은 게 내게 좋은 거다. 난 벨로스터 N 수동변속기 모델을 살 거다.

WORDS 고정식(자동차 저널리스트)

MOTOR 04 포드 - 머스탱 마하1

결국 그날이 오고 만다면, 내게 주어진 마지막 탄소배출권을 탈탈 털어 남김없이 소진해도 여한이 없을 차는 바로 포드 머스탱이다. 동시대의 메가폰이 쏟아내는 수많은 유무형의 가치 중 돌출된 아주 소수만이 아이콘이란 지위를 누린다. 머스탱은 담배 연기 자욱한 쇼비즈니스 문화가 낳은 엘비스 프레슬리같이, 내연기관이 전성한 브루털한 시대가 빚은 아이콘이자 아이돌이었다. 1950년대 미국인의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불어난 소비의 화살촉이 겨눈 것은 바로 ‘욕망’이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쭉쭉 뻗은 도로를 달리기 좋은 큰 차체에 대배기량 엔진을 얹은 자동차가 인기를 끌었는데, 젊은 층에서는 그보다 작은 미들급 차체에 고출력 V8 엔진을 얹은 ‘머슬카’의 인기가 들불처럼 번졌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포드가 그보다 약간 작은 섀시에 V8을 얹었고 그것이 ‘포니카’로 대표되는 ‘머스탱’이었다. 그러니까 머슬카와 포니카는 당대의 가장 젊고 부유한 이들이 ‘스포티하게’ 즐기던 차였던 셈이다. 6세대를 맞은 현행 머스탱의 존재감은 과거의 아성에 비해 한참 모자라다. 1970년대 미국의 오일쇼크 이후 머스탱이 특유의 개성을 잃었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내연기관 시대의 마지막을 함께할 차로 기왕이면 클래식한 1964년식 머스탱이나 1970년식 머스탱 마하 1이 좋겠지만, 여의치 않다면 한발 물러나 2021년식 마하 1도 괜찮겠다. 최고출력 480마력에 달하는 마하 1이 뻐끔뻐끔 내뿜는 배기가스와 함께 마지막 남은 탄소배출권을 천천히 음미하며 달리는 거다. 전기차 마하-E를 출시하며 포드가 이벤트성으로 선보인 가솔린 냄새 향수 ‘마하-오(Mach-Eau)’를 뿌려 기념해도 좋겠다. 영화 <아가씨>에서 고판돌이 나상이 그려진 종이로 만 담배를 피우며 천천히 죽음을 맞았던 것처럼, 내연기관의 무덤에 이렇듯 고상한 건배사를 날릴 테다. “아름다운 것을 간직하는 저만의 방법입니다.”

WORDS 장은지(<모터트렌드> 에디터)

MOTOR 05 지프 - 랭글러 루비콘

서울이 불바다 될까 두려워하는 건 나뿐인가? 기후변화는 극단적인 날씨를 만들고, 예상할 수 없는 자연 재난을 일으키고 있다. 연일 40℃를 넘었던 유럽의 폭염이, 그러니까 열돔현상이 서울에 생기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더위만 무섭나. 물바다는 어떤가. 갑자기 도로가 물에 잠겨 옴짝달싹 못 할 수도 있다. 태풍은? 폭설은? 기후 재난이 영화 속 일이 아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내연기관 대신 전기차를 타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것 같지만 난 생각이 좀 다르다. 남한 인구가 몇이나 되나? 전 세계 자동차 시장으로 보면 해변의 모래 한 줌 정도에 불과하지 않겠나? 우리가 애써봤자 기후변화를 되돌릴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러니 자가용을 친환경 제품으로 바꾸는 것보다 생존 수단으로 삼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서바이벌 모빌리티’라고 아내를 설득하며 내 마지막 내연기관 차량으로 랭글러 루비콘을 점찍는다. 오프로더는 많다. 랭글러보다 더 튼튼한 것도 있고, 더 고급스러운 것은 많다. 랭글러는 터프하지만 불편하다. 승차감이 딱딱하고, 주행 감각도 반응이 빠르지 않다. 반 박자 느린 감각은 산에서야 좋지만 아스팔트에선 답답하다. 편의 장치는 기본적인 것들은 제공하지만, 이 차는 불편하게 타는 차다. 차 폭도 넓어 비좁은 한국 주차장에선 식은땀 좀 흘려야 한다. 하지만 도시에 자연재해가 닥치면 얘기가 달라진다. 역삼동이 융프라우로 바뀌고, 강남대로가 쏭바강으로 변하면 지프 랭글러 루비콘의 생존 본능이 드러난다. 자동차 꾸미기를 좋아해서 차체를 3인치 높이고, 타이어도 36인치로 바꿨다면, 어지간한 자연재해로는 내 퇴근길을 막을 순 없을 것. 서바이벌 모빌리티라고 해서 기름을 펑펑 쓰는 건 아니다. 기존 랭글러에는 3.6L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이 들어 있었는데, 요즘 랭글러에는 2.0 가솔린 터보 엔진이 들어간다. 동력은 큰 차이가 없다. 출력은 살짝 줄고 토크는 더 높아진 정도. 차이는 연비 향상이다. 화석 에너지를 살짝 덜 쓴다. 양심은 있다.

EDITOR 조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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