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플라잉카, 초기 이동은 사람보다 물건
2022. 9. 13. 07:40
-수익과 위험성 모두 고려
2006년 MIT 창업경진대회에서 준우승을 한 사람은 항공우주분야를 전공했던 칼 디트리히 박사다. 상금으로 받은 3만 달러를 시작으로 동문 5명이 의기투합해 '테라푸지어(Terrafujia)'를 설립했다. 미래 모빌리티 시장에 반드시 등장할 이동 수단으로 항공기와 자동차의 겸용, 즉 플라잉카(Flying Car)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디트리히 박사는 실현 가능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2009년 개념을 설명했다. 그러나 제품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당초 2015년 정도를 예상했지만 자동차보다 까다로운 항공기 기준 충족이 쉽지 않았덧 탓이다. 그럼에도 플라잉카 '트랜지션' 개발 계획은 꾸준히 진행됐고 2017년 미래 사업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중국의 지리그룹이 테라푸지어를 전격 인수했다.
테라푸지어 트랜지션은 내연기관을 활용해 최장 643㎞를 날아다닐 수 있고 최고 시속은 160㎞다. 그러나 지리는 인수 후 동력을 일부 전기로 바꾸고 자율비행이 가능한 TF-X 개발에 속도를 냈다. 그 결과 모든 동력을 배터리에 담기로 하고 수직이착륙 물류용 항공기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플라잉카의 미래 활용성을 고민할 때 여객보다 저공 물류 시장이 제격이라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지리가 물건 배송에 관심을 갖는 것은 사람 탑승보다 장점이 훨씬 많아서다. 탑승 주체가 물건이어서 추락 위험에 노출돼도 상해 가능성이 없는 데다 디지털 발전 속도를 고려할 때 사람 이동보다 물건 이동이 훨씬 활발해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물건 배송으로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다면 굳이 불안감을 가진 사람을 이동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자율비행도 같은 맥락에서 시도하고 있다. 사람이 조종하는 것을 인간 탑승이자 비용으로 여기는 관점에서 자율비행의 물건 배송은 수익을 높이되 사고 때 보상 액수를 낮추는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해 사람 탑승을 위해 실험적으로 전동 자율비행 물류를 떠올린다.
그런데 물건 이동, 즉 물류는 배송 물량이 많을수록 수익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동 속도가 빨라야 이동에 필요한 에너지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이를 위해 육상 물류 기업들은 끊임없이 이동 경로 최적화를 위해 매진한다. 많은 물량을, 최소의 에너지 비용으로 최단 시간에 옮겨야 수익성이 극대화되는 구조 탓이다. 이 점을 포착한 지리는 테라푸지어가 개발 중인 TF-2에 흥미로운 기능을 추가했다. 굳이 겸용이 아니라 아예 물류용 자율주행 트럭을 수직이착륙 비행체로 이동시키는 방식이다. 제 아무리 저공 비행 물류를 도입해도 복잡한 도심 배송은 피할 수 없는 만큼 차라리 물건이 적재된 트럭을 비행체가 직접 옮기는 아이디어다. TF-2를 공개하며 도시의 지상 이동성 및 항공 이동성을 동시에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직 최대 이륙 중량은 200㎏에 불과하지만 배터리 에너지 밀도가 높아질수록 이륙 중량도 높일 수 있어 기대감을 감추지 않는다. 실제 2019년 60㎏에 머물렀던 이륙 중량은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200㎏까지 늘어났고 현재는 500㎏에 도전하고 있다. 개발 속도를 높이면 화물을 가득 실은 소형 밴 정도는 충분히 옮길 수 있다고 보는 셈이다.
많은 미래 전문가들도 지리의 복합 운송 방식에 어느 정도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공동 주택에 배달해야 할 물건이 많을 때 값 비싼 플라잉카로 개별 물건을 하나씩 운송하는 것보다 정체가 전혀 없는 하늘 공간을 이동하되 육상 운송 수단을 통째로 옮기는 게 사업적인 면에선 보다 현실에 가깝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안정성이 입증되면 사람이 탑승한 육상 운송 수단을 품을 수도 있다. 실제 테라푸지어는 미래에 사용할 TF-2.0 리프트+푸시 제품을 공개하면서 약 500㎏의 탑재 중량을 내세우기도 했다.
사실 테라푸지어가 보여주는 것처럼 새로운 이동은 현존하는 방식과 결합되는 것이 사업성 면에선 가장 안정적이다. 특히 이동 분야는 기본적으로 이동하는 공간의 특성이 결합돼 기존에 없었던 이동 방식으로 진화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동 수단은 이동의 방식이 결정돼야 적절하게 변신하거나 새롭게 등장할 수 있는데 이동 사업에 뛰어든 모든 기업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이동의 최적화'에 매진한다는 의미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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