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이 조국을 떠나야 한다면 택하겠다고 한 이곳은?
오지탐사대원들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다"
호주 태즈메이니아(Tasmania) 날씨는 시시각각 변했다. 편서풍 영향으로 오버랜드 트랙(Overland Track)이 위치한 서부 산악지대는 특히 더했다. 연간 강수량이 2000~2500mm에 이를 정도로 연중 비와 눈이 내리는 곳이다.
대한산악연맹이 창립 60주년을 맞아 파견한 오지탐사대 역시 트레킹 하는 일주일 내내 비와 진눈깨비, 눈을 하루도 빠짐없이 경험했다. 트랙 바닥은 늘상 젖어있고 이끼와 버튼그라스 등 초목과 유칼립투스 등 관목은 수분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겨울 트레킹은 비보다 눈이다.
눈이 내려야 기온이 내려가 트랙의 길도 얼고 부담이 덜하다. 하지만 눈이 내리는데도 진흙탕길은 여전했다. 진흙탕길은 오버랜드 트랙을 걷는 트레커들에게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발목과 심지어 무릎까지 차오르는 진흙탕길은 30kg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 대원들에게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다. 자칫 부상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대원들은 큰 부상을 당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원들의 등산화는 마를 날이 없었다. 트레킹 중 스패츠는 반드시 착용해야 했다. 스패츠는 눈길을 헤쳐가는데도 진흙탕길을 걸을 때도 등산화와 더불어 발을 보호할 수 든든한 버팀목이다. 지나보니 등산화와 배낭은 트레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다행히 트랙 곳곳에 나무데크가 깔려있어 부분 도움을 받았다. 자연보호와 진흙탕길에서 안전보호 차원이었다. 나무데크엔 벌집 모양의 철망이 깔려있는데 이는 미끄럼 방지를 위해서였다. 젖어있는 나무는 미끄럽기 짝이 없다. 데크의 철망을 벗어나 발을 내딛는 순간 널부러지기 일쑤였다. 이런 낭패는 대원들 모두 당했다.
오버랜드의 트랙 해발고도는 700m~1600m 대다. 고도를 두고 숲과 초원 그리고 밀림, 정글을 통과하기도 한다. 오버랜드 트랙은 능선, 계곡, 산을 넘고, 평원을 가로지르며 걷는 묘미가 있다. 엄청난 강수량 덕에 유칼립투스, 너도밤나무를 중심으로 한 멋들어진 온대우림 식생 분포는 트레커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만큼 오버랜드 트레킹을 하면서 볼 수 있는 태즈메이니아 식생은 다양했고, 동물들도 특별했다.
오버랜드 트랙은 시간상 메인 트랙을 중심으로 걷지만 메인 트랙에서 갈라지는 사이드 트립을 이용하면 더욱 신비한 자연의 모습을 접할 수 있다. 버튼그라스 군락지를 따라 크레이터호수로 오르는 평원은 태즈메이니아 특유의 신비로운 풍광을 선사했다.
버튼그라스는 정중앙에서 나오는 열매가 단추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의 계곡이나 개울 물이 대부분 검붉은색을 띄는 이유는 버튼글라스가 함유한 타닌 성분 때문이다. 오버랜드 트랙은 이런 버튼그라스 군락 사이로 나무데크를 조성해 자연을 보호하는 동시에 트레커들을 보호한다. 특이한 껍질을 자랑하는 유칼립투스 숲을 통과할 때는 특별했다. 마치 아프리카의 사바나 한가운데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여명이 트기 전 버튼그라스 같은 풀과 유칼립투스 나무의 조화를 볼라치면 한 폭의 그림이었다. 온대우림이 주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광경의 극치였다. 웜뱃(Wombat), 왈라비(Wallaby) 등 동물과 조우하기도 한다. 운이 좋으면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태즈메이니아 데블(Tasmania Devil)’을 만나기도 한다는데 오지탐사대는 태즈메이니아 데블을 보는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
태즈메이니아 데블은 19세기 탐험가들이 산에서 들려오는 이들의 울음소리가 악마를 닮았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원들은 동물을 만나면 어김없이 카메라에 담거나 순수한 눈빛으로 교감했다.
태즈메이니아의 최대 호강은 청정한 공기다. 편서풍에 실려 오는 남극의 공기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다. 이곳에는 미세먼지가 없다. 미세먼지 지수를 보니 공기질 ‘최고’라고 떴다. 정말 그럴까 했는데 다음날에도 미세먼지 무(無)였다.
오버랜드 트랙에서는 빗물과 눈은 곧 식수다. 이동하면서 호수의 물도 들판 나무에 쌓여있는 눈도 자연스럽게 마시고 먹었다.
이곳은 자연의 변화가 확연하다. 특히 겨울엔 더하다. 때문에 오지탐사대같은 특별한 목적을 갖고 오는 팀 외에는 이곳을 찾지 않는다. 하지만 겨울에도 온대우림과 정글을 탐험하는데 문제가 없다. 대원들은 실제로 여름만 경험하지 않았지 봄, 가을, 겨울을 동시에 겪은 느낌이었다. 계절과 상관없이 온대우림의 식생이 그대로 드러났다.
트레킹 마지막날 나르시스헛(산장)까지 이동해 세인트클레어 호수에 도착하면 트레킹은 끝이다.
나르시스헛에서 보트 승선 예약을 한 뒤 선착장으로 가기 전 트레커들은 누구 할 것 없이 호수에 하나 둘 뛰어든다. 영하의 기온에다 호수의 물은 그야말로 얼음물처럼 차갑지만 오버랜드 트레킹을 마친 것을 기념하는 일종의 자축 세리머니다.
호수의 차가운 물속에서 잠시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은데도 참고 견디니 신기하게도 몸에 열이 난다.
어찌 보면 트레커들은 일주일만에 처음 물로 씻는 셈이다. 트레킹 내 이를 닦고 고양이 세수만 했지 제대로 한번 씻지도 못했다. 영하의 기온에다 산속의 춥고 찬 기운에 씻는다는 건 엄두를 못냈다. 무엇보다 열악한 환경이라 씻을 곳이 없었다.
트레킹 이틀째 거의 얼음물 수준의 찬물에 머리를 한번 적셨을 뿐이었다. 이러다 보니 닷새째 몸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찬물을 들고 헛 건물 뒤편으로 가 어둠속에서 몸의 일부분만 닦았다.
사실 매일 트레킹을 마치면 산장과 같은 헛에서 땀과 눈비바람에 젖은 옷을 말리느라 사력을 다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먹고 자고 다음날 출발 준비하는 것이 전부였다. 대원들은 비바람 눈보라속에서 미친듯이 일주일 걷기만 했다는 표현이 맞을 지도 모른다.
이처럼 오버랜드 트레킹을 하려면 문명의 이기를 떨쳐야 한다. 오버랜드 트랙에 들어서면 인터넷, 전화 등 통신은 단절되고 전기, 수도는 없다. 오버랜드 트랙엔 자연과 트레커만 존재한다.
오버랜드 트랙 방문자들은 트레킹 시작 전 반드시 이름과 목적지, 회귀 장소와 시간을 적도록 돼 있다.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해서다. 태즈메이니아 국립공원은 트레커들에 LNT(Leave no Trace·흔적 남기지 않기) 원칙을 준수하도록 요구한다. 트레킹 하는 동안 쓰레기는 전부 들고 나와야 한다. 세제는 생물학적 분해가 가능한 제품만 사용하고, 식수를 포함한 물은 빗물을 이용한다. 대원들이 트레킹을 마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쓰레기를 분리해 버리는 것이었다.
오버랜드 트레킹을 하며 태즈메이니아 최고봉 오사산(Mt. Ossa·1669m)을 비롯한 눈덮인 봉우리들을 오르고 호주에서 가장 깊다는 세인트클레어호수(Lake St Clair·수심 190m)에 몸을 던지는 과정은 특별했다.
마지막날 보트를 타고 세인트클레어 호수를 가로질러 문명세계로 나오면 오버랜드 트레킹은 끝이다. 오버랜드 트레킹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불편 하지만 최고다. 문명의 이기 하나 없이 대자연과 교감하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단 하루도 날씨가 안정적이지 않았지만 오지탐사대 대원들 모두 건강하게 무사히 일정을 마친 것은 행운이다. 한편으론 태즈메이니아 오지서 문명과 단절한 채 대자연과 호흡하며 지낸 일주일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대한산악연맹이 파견한 젊은 대원들은 오지에서의 경험을 통해 산악 분야 외 사회 각지에서 더큰 꿈을 펼쳐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트레킹 하는 동안 한번도 한숨을 쉰 적 없고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그런데도 호수를 건너와 카페의 화장실을 쓰는 순간 작은 행복감이 밀려왔다. 트레커들을 위한 간이 샤워실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데 기분이 좋았다. 화장실서 제대로 된 휴지를 써보고 샤워장서 샴푸와 비누를 써보니 여간 편한 게 아니었다. 참 인간은 이기적이다.
여튼 오버랜드 트랙은 도시 문명에서 찌든 사람들의 힐링터이자, 오지탐험가들에게 끝없는 탐험 욕구를 자아내는 탐험지다. 누구에게나 버킷리스트가 있겠지만 오버랜드 트레킹은 리스트 상위에 둘만 하다.
“만약 조국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라면, 나는 분명히 호바트(태즈메이니아)를 택할 것이다.”
진화론의 선구자 찰스 다윈이 1836년 태즈메이니아를 탐험한 뒤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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