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수호 게임체인저 필요" vs "KAMD·공군력 증강 우선" [심층기획]
1996년 한·일 관계 악화로 YS가 지시
文정부 때 사업 의지.. 2022년 예산에 반영
도입 타당성·당위성 논란은 끊임없어
연구진들도 사업추진 놓고 의견 갈려
군 안팎에서 사업 미래 불투명 시각
하반기 국방위 국감·예산심의 변수
함재기, 국산 개조 기종으로 변경 땐
사업 일정·비용 증가 초래 가능성도
문재인정부의 국방 분야 역점사업이었던 경항공모함(3만t급) 건조가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정부가 2023년도 국방예산안에서 경항모 사업비를 반영하지 않아서다. 정부는 “경항모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지만 사실상 무산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면서 해양패권 수호를 위한 ‘게임체인저’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대북 군사대비태세 구축이 우선이라는 반박이 엇갈린다.
◆연혁도, 논란도 오래됐던 경항모 사업
항모에 대한 지식을 얻은 상황에서 1996년 독도 문제로 한·일관계가 악화되자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일본과의 해군력 격차를 메우기 위해 2만t급 경항모 건조를 지시한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로 사업은 취소됐다. 대신 넓은 비행갑판과 해병대 상륙능력을 갖춘 대형수송함 독도함과 마라도함이 만들어졌다.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경항모가 다시 주목받은 것은 2018년. 해군은 F-35B 수직이착륙 스텔스전투기 탑재가 가능한 대형수송함의 필요성을 군 당국에 제기했다. 군은 2020년 8월 공개된 ‘2021~2025 국방중기계획’을 통해 “한반도 인근 해역과 원해 해상교통로를 보호하기 위한 경항모 확보사업을 2021년부터 본격화할 것”이라고 언급하며 사업 추진을 공식화했다. 이를 위해 올해 국방예산에 72억원이 반영되는 등 신속하게 사업이 진행됐다. 하지만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공군 F-35A 20대 추가 도입이 결정되고, 내년도 예산안 반영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존폐 위기에 처했다.
경항모 사업 추진 기반이 흔들린 것은 도입 타당성과 당위성을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문재인정부의 ‘의지’에 힘입어 사업은 빠르게 추진됐다. 하지만 수조원을 들여 만들 경항모를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대북 군사대비태세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국가안보전략 방향성과 일치하는지 등에 대한 합의나 공감대는 없었다.
국가적 차원의 외교안보전략 수립→국방전략수립 및 집행→관련 무기개발 사업 식별→군 내 공감대 형성→사업화로 이어지는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경항모를 도입하면 주변국과의 안보문제와 방위산업 진흥, 남북 대치 상황 등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게임 체인저’ 논리를 내세웠다. 그 결과 경항모 사업이 처음 추진된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문재인정부의 경항모 사업에 대한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고, 이는 사업 추진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경항모 도입을 둘러싼 정치권 논쟁은 연구진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유지훈 연구위원과 박용한 선임연구원은 지난 5월 ‘한·미동맹 강화와 자강을 위한 한국형 경항공모함의 전략적 가치’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적의 공격으로부터 생존성을 보장하는 가운데 단독 또는 연합 전력과 함께 적의 핵심 표적 타격, 다층 미사일 방어와 방공 작전, 대잠수함 작전 등을 수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상에서 기동하는 항공모함으로부터 발진하는 항공 전력은 북한 주요 군사시설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항모 사업 주무부처인 방위사업청은 현재 진행 중인 함재기 국내 개발 가능성 검토 연구용역 직후 경항모 기본설계 입찰공고 진행 여부 등을 따져보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군 안팎에서는 경항모 사업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시각이 많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국방부 등에서 경항모를 긍정적으로 거론했던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웠고, 해군조차도 경항모를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경항모 사업의 변수는 하반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와 예산심의다. 국정감사에서 경항모 사업이 화두로 떠오르면 내년도 예산안 심의에서 연구용역 등 간접비 명목으로 일부 사업비가 ‘부활’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3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한 2022년도 국방예산에서는 경항모 예산 72억원이 정부 원안대로 반영됐다. 앞서 국회 국방위는 간접비 5억원만 남기고 관련 예산을 삭감했다. 이후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본회의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증액을 요구했으나 야당인 국민의힘이 반대해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민주당이 전체 수정예산안을 단독 상정하면서 어부지리 격으로 경항모 예산도 되살아났다.
하지만 당시 예산안 복원은 경항모 사업을 중시했던 청와대의 개입에 의한 결과였다는 점에서 예산 복원 여부는 불확실하다는 견해도 많다. 정부 소식통은 “공공지출 조정으로 대형 신규 무기도입사업 착수 시점이 차기 정부로 넘어갈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데, 경항모 사업을 움직였던 ‘보이지 않는 손’은 사라졌으니 경항모를 만들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함재기 선정도 숨어있는 ‘불씨’다. F-35B 대신 국산 KF-21을 개조한 기종을 사용한다고 하면, 함재기 개발 기간이 추가되면서 전반적인 사업 일정과 비용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F-35B 탑재를 전제로 추진하던 사업 계획을 수정해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경항모 사업 타당성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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