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기후정의행진, 그들이 온다
괜찮지 않은 것들은 예전부터 괜찮지 않았다. 폭우로 침수되기 전에도 반지하는 거주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했다. 폭염이 아니더라도 홈리스에게 여름은 혹독하게 더웠고 겨울은 혹독하게 추웠다. 식량 위기를 거론하기 전에도 먹을거리 구하기 힘든 사람들이 있었고, 흉작이라 걱정, 풍작이라도 걱정인 농민들 사정도 오래됐다. 사람답게 살 권리보다 시장답게 처분할 당위가 앞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누군가는 이미 괜찮지 않았다.
기후위기는 누구도 겪어본 적 없는 세계로 우리를 데려갈 것 같은 불안을 안긴다. 그런 세계는 없다. 다르게 겪는 세계가 있을 뿐이다. 농민과 노동자의 비참이 무시됐기에 자연을 끊임없이 캐고 쓰고 버리는 구조도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돌보고 키우고 살리는 일이 여성에게 떠넘겨져, 사람마저 쓰고 버리는 구조가 어찌됐든 굴러갔다. 원주민과 비-백인은 비-인간화되면서 더 쉽게 착취당했고 비인간 동식물은 비인간이라서 더 죽임을 당했다. 누군가 겪는 삶의 위기는 지워지고 자본의 위기가 그들에게 떠넘겨졌다. 그렇게 위기를 떠넘겨온 세계가 기후위기의 세계다.
정의롭지 못한 세계가 기후위기를 키웠으니 기후위기의 해법이 정의로워야 함은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현실은 다르다. 두 해 전부터 석탄화력발전소 폐쇄가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노동자가 다른 발전소로 재배치되었는데 청소를 맡았던 여성노동자들은 대부분 계약해지되었다. 폐쇄 예정 발전소 노동자들은 불안하다. 발전사와 정부는 폐쇄 시점도 정확히 일러주지 않는다. 재취업을 위한 교육은 있지만 재취업의 약속은 없다. 발전소가 폐쇄되는 지역에서, 천연가스 발전소가 새로 들어서는 지역에서, 주민들도 위기를 떠안게 됐다. 아직은, 이만하면, 괜찮을까? 괜찮지 않다.
발전사도 정부도 이 모든 위기를 외면한다. 그러니 같은 위기를 반복할 석탄화력발전소 신규 건설 계획을 버젓이 내놓는다. 자신의 위기를 떠넘길 명분이 되는 만큼만 기후위기를 언급한다. 정부나 기업은 탈탄소를 진입장벽으로 삼는 시장에서 새로운 이윤을 확보하는 데 관심을 둘 뿐이다. 재생에너지를 늘려야 한다며, 태양광 패널이 농사짓던 사람들을 밀어내든, 풍력발전기와 송전탑이 마을을 점령하든 관심 밖이다. 그들이 지키고 싶은 건 삶이 아니라 재산권의 신화다. 화석연료기업들이 챙기는 수십조원의 이윤을 에너지체제 전환의 밑돈으로 쓸 생각을 못하는 이유다. 정부와 자본은 에너지체제를 전환할 의지도 역량도 없다. 기후위기의 세계를 지속시킬 뿐이다.
이래도 다른 세계는 가능할까? 아득해질 때면 인권의 나침반을 꺼내본다. 탄소 감축보다 자본주의 감축을 길잡이 삼아본다. 발전소 노동자들의 위기는 발전소 폐쇄가 아니라 이윤만이 관심사인 기업으로부터 온다. ‘김용균들’의 목소리가 알려온 진실이다. 이윤 중심에서 권리 중심으로 에너지체제를 바꾸는 것이 목표라면, 조금씩 다르게 위기를 겪는 우리가 함께 길을 찾을 수 있다.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시스템이 누구도 위기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고 우리부터 선언하고 약속할 수 있다. 익숙한 권리들을 다시 쓰는 과정도 필요하니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존엄과 평등을 나침반 삼아 길을 나서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정의를 세우는 만큼 전환이 이뤄진다. 탄소를 빠르게 감축해야 한다면, 우리가 더욱 빠르게 세력화해야 한다. 사람들은 모이기 시작했다. 여름이 덥고 겨울이 추울 때마다 낭패감을 겪을 순 없으므로 먼저 싸웠던 사람들. 기업이 쓰고 버리기를 반복할 때마다 존엄을 버릴 수 없어서 싸웠던 사람들. 이참에 우리가 일하고 관계 맺고 살아가는 양식을 다시 짜보자며 싸우는 사람들. 모두를 위한 권리를 요구하며, 기후위기의 세계를 끝낼 기세를 뻗치며. 9월24일 기후정의행진, 그들이 온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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