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2] ‘나’와 ‘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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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페르시아 제국 황제는 술에 취해 저녁에 약속한 내용은 반드시 다음 날 아침 다시 한번 확인받고 실행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하루 전날 자신을 그 다음 날 자신이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에서 깬 황제와 그 전날 취한 상태의 황제 모두 같은 사람 아닌가? 어떻게 같은 인물이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없다는 말일까?
인간의 몸은 언제나 변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피부 세포가 떨어져 나가고, 보이지 않는 몸속 장기의 세포들 역시 천천히 변하고, 자라고, 사라져가고 있다. 덕분에 아침마다 거울에 보이는 얼굴에선 큰 변화를 느낄 수 없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우리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어릴 때 부드럽던 피부는 이제 낡은 양피지를 닮아가고,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 나의 모습은 마치 예전 아버지 얼굴을 보는 듯하다.
몸뿐이 아니다. 현대 뇌과학은 영혼과 자아 모두 결국 뇌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가설한다. 몸과 뇌가 변하면 논리적으로 자아와 영혼 역시 변화를 피할 수 없겠다. 열 살 때 나의 희망과 두려움과 선택을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듯, 지금 이 순간 나의 선택과 두려움과 희망 역시 먼 미래에는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시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물리학자들은 종종 “시간 덕분에 모든 일이 동시에 일어나지 않을 뿐이다”라고 대답한다. 비슷하게 시간과 함께 우리의 자아 역시 서서히 변하고 있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의 ‘나’만큼은 변치 않고 영원할 것만 같다. 결국 여러 자아와 정체성을 동시에 가질 수 없기에 우리는 “나는 나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만약 ‘메타버스’라고 하는 미래 디지털 현실이 보편화한다면? 아바타를 통해 우리는 동시에 황제이자 거지일 수 있고, 같은 순간에 군자이자 악마일 수도 있겠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인생에 가장 중요한 질문은 멀지 않은 미래에 “나들은 누구들일까?”라는 새로운 질문으로 변신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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