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 한심한 '부자감세' 논란

김정환 2022. 9. 13.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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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첫 정기국회가 열렸다. 향후 88일간 치열한 입법 전쟁이 펼쳐진다. 최대 쟁점 법안은 단연 법인세다. 여당은 현 정부 상징인 민간 주도 성장의 핵심 정책으로 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추는 법안을 들고 왔다. 야당은 이를 재벌기업에 대한 감세로 규정하며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안 된다"고 반발한다.

법을 놓고 서로 다른 가치가 충돌할 땐 애초 법을 만들었던 원칙을 되새기면 방향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필자는 보통 법전 첫머리에 있는 총칙을 읽어본다. 법인세법 총칙에는 '법인은 그 소득에 대한 법인세를 납부할 의무가 있다'(3조)고 명시돼 있다. 즉 법인세는 자본(소득)에 매기는 세금이다. 법인은 소득에 대해 세금을 내는 매개체에 불과하다. 따라서 법인세 인하의 요체는 기업에 대한 감세가 아니라 돈에 매기는 세금을 덜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인세 인하가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지 따지려면 과세 대상인 자본의 속성부터 살피는 게 순서다. 자본의 속성은 이동성과 효율성이다. 쉽게 말해 더 나은 투자처를 향해 물처럼 흐르며 제 몸집을 키워보려는 특성이다.

이 특성 때문에 선진국은 저율의 단일세율로 법인세를 정한다. 세율이 높아지면 돈은 쉽사리 해외로 달아나 버린다. 역내에 부(富)가 쌓이지 않으면 투자와 고용을 할 수 있는 여지도 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단일세율을 적용하는 나라가 24개국에 달하는 이유다. 한국의 경쟁국들은 세율 인하를 통해 경쟁적으로 자국에 기업을 유치하려 한 지 오래됐다. 한국(25%)과 OECD 평균 세율(21.5%) 간 격차는 상당하다.

단일세율은 기업 경영 효율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OECD 중 과표구간이 4단계까지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과표가 유달리 많아 기업들은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사업 키우기를 꺼린다. 몸집을 늘리면 과표가 따라 올라 세금이 눈덩이처럼 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국 기업들은 사업 시너지 효과를 위해 조직을 융합하지 않고 세금을 피해 거꾸로 회사를 잘게 쪼개는 경향이 있다. 세제가 효율성을 가로막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법인세는 자본에 대한 법이며, 개정 효과를 논하려면 자본의 속성부터 읽어야 한다. 이를 간과하고 손쉽게 '부자 감세'만 외치는 것은 공부를 게을리했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아직도 머리가 혼란스럽다면 법률의 참목적을 담은 총칙부터 되짚어 일독하길 권한다.

[경제부 = 김정환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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