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122] 수면 부족이 기부금을 줄인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2. 9. 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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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시대’다. 온갖 스트레스로 피곤한데 잠은 오지 않는다. 지칠수록 숙면으로 마음을 재충전해야 하는데 마음이란 시스템에 모순적인 요소가 많아, 피곤하면 오히려 위기 상황으로 인식해 각성도를 높인다. 마음의 주요 기능 중 하나가 정보기관의 역할이다. ‘지금 잘 상황이 아니야. 위험해’ 같은 첩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밤에 해외 기업과 중요한 화상 회의 약속처럼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우리 삶의 위기는 대부분 잘 자야 잘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내일 시험에 대한 부담을 마음이 위기 상황으로 과도하게 인식해 각성도를 올려 버리면, 숙면이 어려워지고 다음 날 오전에 최상 컨디션으로 시험을 보는 데 오히려 불편을 준다.

수면 부족이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감소시킨다는 최근 연구도 있다. 수면이 부족한 경우에 친사회성(prosociality)과 연관된 뇌 신경망의 활성도가 위축되고 타인을 돕고자 하는 이타적 경향도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다음 날 잠을 잘 자면 이타적 경향이 회복되었다고 한다. 서머타임이라는 미국의 DST(Daylight Saving Time)를 활용한 연구를 보면 한 시간 수면 부족을 겪게 되는 서머타임 적응기에 기부 금액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서머타임에 적응하면 기부 금액이 정상화되었다고 한다. 무더운 여름이나 환절기처럼 수면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시기도 기부 행사 일정을 잡을 때 고려해야 하는 요소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잘 자는 사람이 이상한 것이라는 유머를 불면으로 고생하는 이들에게 종종 한다. 불면만으로도 힘든데 수면 하나 내가 직접 통제하지 못하나 하는 생각이 더 나를 괴롭힐 수 있다. 그래서 더 노력하는데, 노력할수록 잠은 안 오니 자존감마저 떨어진다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밤이 점점 더 무서워지며 그 공포가 불면을 만성으로 이어지게 한다.

유머라는 것이 종전 상식을 약간 비틀어 웃음을 만드는 화술이라 할 수 있다. 불면처럼 마음과 연관된 현상에는 유머 같은 역설적 접근이 정공법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골프 스윙 때 힘을 빼라’도 역설적 접근이다. 공이 앞에 있는데 힘을 빼는 것이 쉬운 일인가. 그런데 힘을 빼야 스윙 궤도가 자연스럽게 유지되면서 정확한 임팩트로 칠 수 있다.

수면도 유사하다. ‘오늘은 자야지’ 하는 생각에 일찍 누워 잠과 씨름하면 침실이 전쟁터가 되어 각성도는 오르고 숙면과는 멀어진다. 잠이 오지 않을 때 마음과 역설적으로 소통해보자. “마음아. 어차피 짧은 인생, 무얼 그리 자려고 하니. 네 걱정은 고마우나 나는 오늘 이 밤을 즐기겠어” 식으로 말이다. 힘을 빼야 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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