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 차례(茶禮)

2022. 9. 12.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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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秋夕)입니다.

할머니, 홍시(紅枾) 하나 드리고 싶어요.

추석 잘 쇠셨지요? 저는 추석만 되면 할머니 무릎을 베고 옛날이야기를 듣던 추억과 할머니가 괴춤에 숨겼던 눈깔사탕을 꺼내 입에 넣어주던 기억과 다락에 숨겼던 홍시를 아무도 몰래 저에게만 주셨던 일이 생각납니다.

홍시도 놓고, 용둣골 수박에 소금을 발라 놓고 할머니를 마음속으로 가만히 불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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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추석(秋夕)입니다.
할머니,
홍시(紅枾) 하나 드리고 싶어요.
상강(霜降)의 날은 아직도 멀었지만
안행(雁行)의 날은 아직도 멀었지만
살아생전에 따뜻했던 무릎,
크고 잘 익은
홍시(紅枾) 하나 드리고 싶어요.
용둣골 수박,
수박을 드리고 싶어요,
수박 살에
소금을 조금 발라 드렸으면 해요.
그러나 그 뜨거웠던 여름은 가고
할머니,
어젯밤에는 달이
앞이마에 서늘하고 훤한
가르마를 내고 있어요.
오십 년 전 그날처럼,
추석 잘 쇠셨지요?
저는 추석만 되면 할머니 무릎을 베고 옛날이야기를 듣던 추억과
할머니가 괴춤에 숨겼던 눈깔사탕을 꺼내 입에 넣어주던 기억과
다락에 숨겼던 홍시를 아무도 몰래 저에게만 주셨던 일이 생각납니다.
이제 저도 할머니의 나이가 됐습니다.
할머니에게 받기만 했던 저는 당신이 좋아하시던 차례 음식을 차립니다.
홍시도 놓고, 용둣골 수박에 소금을 발라 놓고
할머니를 마음속으로 가만히 불러봅니다.
서리 내리는 날과 기러기가 날아가는 날이 아직 멀었지만,
저도 언젠가 할머니가 날아가신 하늘로 뒤따라가겠지요?
어젯밤엔 유난히 달이 훤하게 빛나고 있었어요,
할머니 앞이마에 서늘하고 훤한 가르마처럼.

박미산 시인, 그림=원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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