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귀은의멜랑콜리아] 전국노래자랑이 울림을 주는 이유

2022. 9. 12.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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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러움이 그리움이 된 무대
송해씨 떠난 자리 김신영씨 바통
마치 손녀가 이어받은 것 같아
격의 없는 응원의 장소.. 마음 시큰

김신영씨가 전국노래자랑 MC를 물려받았다. 그녀는 9월 3일 대구에서 첫 녹화를 마쳤다. 유튜브에서 그녀가 무대를 열고, 그 무대를 지키는 것을 보았다. 마치 할아버지 자리를 아무것도 모르는 손녀가 이어받은 것 같았다. 손녀는 최선을 다해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듯했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변한다. 지금 우리는 과거보다 더 천천히 늙지만, 더 빨리 나이 먹는다. 세상에 뒤처진다는 불안에 휩싸인다. ‘∼린이’라는 접미사가 여기저기에 쓰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린이, 부린이, 헬린이, 모두가 모든 분야에서 초보자가 되고 있다. 나도 빨리 주식을, 부동산을, 헬스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모든 영역에서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 증식한다.
한귀은 경상국립대 교수 작가
변화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공정하지도 않다. 변화의 중심에는 자본이 있다. 변화는 잉여가치를 만들고 그 부산물은 자본가와 권력이 나눠 갖는다. 그 부작용은 더 가난하고 더 취약한 계층에게 떨어진다. 경제위기에 노출되는 쪽은 그 변화의 주변부 혹은 아예 그 변화의 수혜와 무관한 계층이다.

변화로 인한 양극화는 점점 더 깊어지는데, 변하지 않는 것이 전국노래자랑에 있다. 여전히 비주류고, 비주류라서 더 지키고 싶다. 계급도, 이데올로기도, 혐오도, 구별짓기도 없이 모든 이가 어울린다. 생전 송해 님이 그 무대에 오르면 이상하고 느슨한 연대가 만들어졌었다. 그가 남긴 자리에 김신영씨가 섰다. 그녀는 무대에서 한 번도 내려가지 않고, 손뼉을 치고 함께 춤을 추고 추임새를 넣고 출연자를 격려했다.

전국노래자랑을 보면 알게 된다. 촌스러움은 버려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그 촌스러움을 그리워해 왔다는 것을. 그 무대를 마주하고 아무 데나, 아무렇게나 앉아 함께 노래하고 함께 웃고,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는 장소에 머물고 싶어했다는 것을. 우리에겐 아무것도 안 해도 연대가 만들어지는 장소가 필요했다.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송해 님의 서사를 우리는 조금은 알고 있다. 그의 슬픔 때문에 그를 보고 있으면 우리가 이해받는 것 같다. 그가 웃으면 마음이 열리고 때로는 해제가 됐다. 김신영씨에게도 녹록지 않은 삶의 서사가 있다. 첫 녹화를 보며 마음 시큰해진 이유다. 상처는 공명하고 우정을 만든다.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는 젊었을 때 전국노래자랑을 나가셨다 한다. 엄마로부터 전해 들었다. 엄마는 지나가는 말투로, 그러나 다소 놀리는 듯한 어조로 말했는데, 이유는 아버지가 예선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엄마는 덧붙인다. 네 아버지 음성은 너무 좋지만, 너도 알잖아, 박자 못 맞추는 거. 엄마는 더 비밀스럽게 더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네 아버지 노래자랑 두 번 나갔잖아. 두 번 다 떨어졌잖아.

딸로서 아버지 자랑하는 거 같지만, 사실 우리 아버지 음성은 정말 좋았다. 음악 좀 들어 본 사람으로서, 만약 아버지가 음악 교육을 좀 받을 수 있었다면 이후 이야기가 좀 달라졌을 거다. 아마 전국노래자랑은 안 나가셨겠지. 나름 구별짓기 하셨을 테니까. 그러나 돈 없어 교육은 못 받았고, 전국노래자랑은 아버지를 받아주었다. 기회를 준 거다. 박자 못 맞추면 당연히 떨어지는 거니까 공정한 거다. 전국노래자랑은 그렇게 매우 공정한 오디션이었다고 생각한다. 자비라고는 없는 땡 소리 들었을 때 아버지 마음이 어땠을까. 순간, 일그러졌을 아버지 얼굴, 어디로 내려가야 할지 방황했을 아버지 긴 다리가 떠오른다. 그때 아버지는 경험 없고 두려움 많은 젊은이였겠지.

김신영씨 아버지도 전국노래자랑에 나가셨단다. 여섯 살 신영은 오빠와 함께 아버지 옆에서 개다리춤을 추기로 했단다. 그녀의 아버지도 떨어졌는데 액션에 과몰입하다 보니 덤블링을 연거푸 했고, 결국 숨이 차 첫 소절에서 과호흡해 버린 거다. 김신영씨 아버지도, 나의 아버지도 수줍음 많은 청년이라 술의 힘을 빌렸을 테고, 덕분에 흥이 터져 무대에 올랐을 테고, 결국 그 흥 때문에 무대에서 떨어졌겠지만, 그 순간을 딸들이 그립게 추억한다. 전국노래자랑 덕분이다. 전국노래자랑은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변함없이 지키는 장소인 것이다.

과거로 회귀하자는 뜻이 아니다. 자본가를 위해 수많은 사람을 그림자 노동시키는, 경제위기를 부추기는 혁신을 반성하자는 의미다. 혁신은 바이러스처럼 모든 시스템에 침입한다. 우리가 일터에서 느끼는 현기증은 이 혁신 때문이다. 시스템에 이것저것 입력하고 검증받고, 그 과정에 익숙해질 즈음 시스템은 또다시 ‘개선’이라는 미명으로 바뀐다. 그것에 적응하느라 다시 노력과 시간을 비용으로 치른다. 시스템은 과잉되고 그 때문에 일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몇 배로 증폭된다.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면 손해를 넘어, 징계에 이르기도 한다. 시스템은 업그레이드된다는데, 삶은 계속 다운된다. 각종 인증과 검증의 절차는 사람 사이의 신뢰와 책임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든다. 그러는 사이 자본은 더 비대해진다.

전국노래자랑이 알려준다. 더 급진적으로 촌스러워져야 한다는 것, 더 혁명적으로 아무것도 안 해야 된다는 것, 그래야 불안도 혐오도 구별짓기도 없이, 믿음, 우정이 지켜진다는 것. 우리에겐 그런 자리가 절실하다는 것.

한귀은 경상국립대 교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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