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버튼 움켜쥐는 북한..좁아지는 '담대한 구상'[뉴스 분석]
김정은 “절대 핵 포기 없다”
비핵화 협상 공개적으로 차단
우발적 충돌 시 사용 우려도
전문가 “더 유연한 정책 필요”
북한이 지난 8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7차 회의에서 핵무기 보유 정책을 새로 법제화한 것은 남한과 미국의 비핵화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핵무기 사용 조건을 포괄적으로 규정하면서 실전 공격용으로 활용하겠다고 위협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한·미 비핵화 협상 추진 방식을 유연하게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밝힌 ‘핵무력정책 법령 채택’ 취지는 비핵화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김 위원장은 “절대로 먼저 핵포기란, 비핵화란 없으며 그를 위한 그 어떤 협상도 없다”며 “우리의 핵을 놓고 더는 흥정할 수 없게 불퇴의 선을 그어놓은 여기에 핵무력정책의 법화가 가지는 중대한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선 비핵화 움직임을 전제로 대북 제재 해제 등 경제적·정치군사적 지원을 추진한다는 한·미 당국의 비핵화 구상에 다시 퇴짜를 놓은 것이다. 특히 김 위원장은 “핵을 대부(대가)로 개선된 가시적인 경제생활환경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미국과 남한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탓하며 핵무기 보유·강화를 정당화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엔 “우리 정권을 어느 때든 붕괴시켜버리자는 것”이라고, 남한엔 “위험한 군사행동과 군비현대화 놀음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비핵화 논의 조건으로 한반도 정세 대전환을 요구했다. “핵정책이 바뀌자면 세상이 변해야 하고 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환경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라는 기존 요구에서 나아가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조건을 들이민 셈이다. 핵무력 강화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새로 채택된 핵무력정책 법령엔 핵무기 사용 원칙과 조건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외부의 침략과 공격에 대처한 최후의 수단’이라는 원칙 아래 ‘적대세력의 핵 및 비핵 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작전상 필요가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경우’ ‘핵무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 등이 명시됐다.
전문가들은 자위적·방어적 목적을 넘어 선제 공격용으로 핵무기를 동원하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지적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한반도에서 우발적 군사충돌이 발생할 경우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고 분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핵무기가 대남 선제 위협용으로 실전에 사용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부의 대북 비핵화 로드맵 ‘담대한 구상’의 작동 여지는 더욱 좁아지게 됐다. 선제적 핵공격 위협까지 거론됨에 따라 일각에선 자체 핵무장론 같은 ‘강 대 강’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는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기조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 비핵화는 지난한 문제”라며 “인내심과 끈기를 갖고 일관되게 대북정책을 밀고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전제로 좀 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12일 통화에서 “북한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핵군축을 요구하고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안전보장을 제공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서로에 대한 위협을 줄여나가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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