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영연방의 미래
지난 8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는 성대하게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10일간 애도기간을 거쳐 오는 19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장례식이 엄수된다. 12일장을 치르는 셈이다.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주석과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례가 각각 13일장, 12일장이었다. 한국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장례가 9일장으로 비교적 긴 편이었다. 2011년 ‘국가장법’ 개정 이후에는 전·현직 대통령 등 국가장 대상자의 장례기간이 5일 이내로 규정됐다. 여왕의 장례식에는 영연방을 비롯해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 각국 지도자들이 참석한다. 지금까지 세계 정상이 가장 많이 참석한 장례식은 2013년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때의 90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여왕이 눈을 감은 뒤 세계인이 모두 눈물 흘리는 것은 아니다. 이웃 나라이자 과거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에서는 “리지가 관짝에 들어갔다(Lizzy’s in a box)!”는 조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확산됐다. 축구 경기장에서 팬들이 응원가를 개사한 노래 영상이 인기를 끈 것이다. 아일랜드는 800여년간 영국 지배를 받으면서 모국어를 말살당했고, 곡물 수탈로 기근에 시달리는 등 고통을 겪었다. 아일랜드 사람에게 “영국인 같다”고 하는 말은 한국인에게 “일본인 같다”고 놀리는 일과 비슷하다고 한다. 케냐와 남아공, 방글라데시 등에서도 여왕을 애도하지 않겠다는 이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과거 영국의 식민지배로 자신의 아버지·할아버지 세대가 착취당했는데, 제대로 사과받지 못했다는 게 이유다.
영연방 56개 국가 중 뉴질랜드와 자메이카 등 14곳에선 영국 왕이 공식 국가원수이다. 하지만 여왕을 잃은 영연방이 현재와 같은 연대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화국 체제로의 전환 요구가 거세지는 데다 신임 국왕 찰스 3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큰 탓이다. 캐나다에선 지난 4월 설문조사 결과 “찰스 왕세자를 왕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응답이 65%를 기록했다. 카리브해 국가들은 과거 식민지배와 노예제에 대한 배상 및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시대’의 폐막이 식민주의의 진정한 종언을 의미하는 것 같다.
안호기 논설위원 haho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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