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회전 일시정지가 가져온 놀라운 변화
지난 7월 12일, 개정 도로교통법이 시행됐다. 이번에 시행된 개정 도로교통법의 핵심 키워드는 '보행자 보호'이다.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을 때는 물론, '보행자가 통행하려고 하는 때'에도 일시정지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으며, 어린이보호구역 내 신호기가 설치되지 않은 횡단보도에서는 보행자의 횡단 여부와 상관없이 무조건 일시정지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교통 환경을 고려하면, 개정 도로교통법 내용은 다소 어색하고 낯설다. 평소 그냥 지나치던 도로에서 일시정지를 하라고 하니 일각에서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횡단보도 2개를 연달아 통과해야 하는 우회전 상황에서는 언제 멈추고 언제 출발해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이 불명확하다는 반응도 있다. 개정 도로교통법 내에서는 다양한 상황에 따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통틀어 놓고 보면 개정 내용의 메시지는 매우 간단하다. 우회전 시 보행자 안전에 초점을 두고 주위를 살피자는 것이 핵심이다. 눈앞에 보행자가 보이면 일단 정지하라는 것이다. 사실상 운전자들에게 큰 폭의 행동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를 더욱 기울이자는 보완적인 개념이 짙다.
진행과 정지의 판단 기준은 전적으로 '보행자의 유무'다. 운전자는 차량 또는 보행 신호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보행자가 있는지를 먼저 살피고 판단해야 한다. 단적인 예로 보행 신호가 적색이어서 자동차 진행이 가능한 상황에서도 보행자가 횡단 중이라면 반드시 일시정지를 해야 한다. 반대로 보행 신호가 녹색이더라도 보행자가 없는 것이 확인됐다면 서행하여 통과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가 보행자 보호에 이토록 심혈을 기울이는 배경은 뚜렷하다. 우리나라 각종 보행자 교통사고 통계가 매우 심각하기 때문이다. 먼저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수 중 보행 사망자 비율이 40%에 육박한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19∼2021년)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총 9346명이며, 이중 보행 사망자가 3413명(약 36.5%)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인 19.3%(2019년도 기준)보다 2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차량 우회전 상황에서도 상당한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교통사고로 발생한 보행 사상자(사망자와 부상자의 합) 12만3553명(사망자 3413명, 부상자 12만140명) 중 우회전 상황에서 발생한 사상자는 1만2817명(사망자 213명, 부상자 1만2604명)으로 10%가량을 차지한다. 전체 교통사고 보행 사상자 중 우회전 교통사고 보행 사상자의 비율도 2019년 10.0%에서 2020년 10.4%, 2021년 10.9%로 해마다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우회전 시에는차량이 보도 측에 인접해 회전하고 자동차 A필러(앞유리와 1열 창문 유리 사이에 있는 기둥)에 의해 보행자 인식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보행자 사고에 취약하다. 또한 운전대가 좌측에 있는 국내 자동차 특성상, 전방 및 좌측에 비해 우측 사각지대가 더 길고 넓은 것도 보행자 인식에 제한을 준다.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의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경찰청에 따르면 개정 도로교통법이 시행된 지난 7월 12일부터 8월 10일까지 30일간 발생한 우회전 교통사고는 722건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 1483건 대비 51.3% 감소했다. 개정법 시행 전 1개월(6월 12일∼7월 11일)과 비교해도 우회전 교통사고건수는 45.8% 줄고, 교통사고 사망자는 30.0% 줄었다.
내년 1월 22일부터는 우회전 사고 예방을 위해 우회전 전용신호등 설치 운영에 대한 시행규칙이 시행된다. 우회전 신호등이 설치돼있는 경우 특별히 유의하고 준수해야 한다. 이처럼 향후 다양한 보행자 보호 정책들이 시행과 정착을 앞두고 있다. 국민들이 받아들이기에 다소 시간이 걸리고 헷갈릴 수 있지만, 결국 수많은 정책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자동차보다 보행자가 먼저'라는 것이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를 이해한 순간 새로운 보행자 보호 교통 정책들이 더욱 쉽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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