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특허침해소송 대리제' 공정하지 않다

2022. 9. 1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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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최근 신드롬급 인기를 얻고 종영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는 실용신안(특허), 영업비밀, 상표 등 지식재산권 침해라는 일반인에게 다소 익숙하지 않은 소재를 다뤄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지식재산 분야는 전문적 영역에 속하다 보니 그동안 TV 드라마에서 잘 다루지 않아 드라마 우영우 변호사는 지식재산업계에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

드라마에서 변호사들이 지재권 침해 소송 대리인으로 나서 법리 주장을 통해 부당하게 피해를 입은 소송 당사자들을 구제해 주고, 잃어버린 지재권 권리를 되찾아 준다. 하지만, 소송 준비나 변론 과정에서 법률 전문성만을 지닌 천재 변호사 우영우는 물론 동료 변호사들은 지재권에 대한 기술적 지식과 이해도가 낮아 기술적 문제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으며 진땀을 흘리는 장면도 나온다.

드라마가 보여준 것처럼 현행법상 우리나라에서 특허침해소송의 경우 기술 전문성을 갖춘 변리사는 소송 대리인으로 배제한 채 변호사만 소송 대리를 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기술적 영역에 해당하는 특허 분쟁에서 특허 기술 전반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이해도가 높은 변리사가 소송을 맡지 못하게 하고, 변리사에 비해 기술적 전문성이 부족한 변호사가 대리인을 대신토록 하는 모순된 법적체계를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과학기술계와 산업계는 지난 20년 가까이 특허 유·무효와 침해여부를 판단하는 특허침해소송에서 기술·특허 전문가인 변리사가 대리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이런 법률 소비자의 요구에 국회가 움직였다. 지난 17대 국회에서 '변호사-변리사 공동소송대리제' 도입을 위한 변리사법 개정 법률안이 처음으로 발의됐다. 그러나, 변호사를 비롯한 법조계의 반발에 부딪혀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고, 18·19·20대 국회에서도 마찬가지로 폐기되는 등 연이은 난관에 봉착했다.

그러던 것이 21대 국회 출범과 함께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법안 발의 이후 진통 끝에 지난 5월 상임위에서 의결돼 법사위로 넘겨졌다. 이후 세 달 가까이 계류 상태에 있다가 지난 9일 결국 법사위 심사 안건에서 빠져 법 통과에 제동이 걸렸다. 법적 소송에 있어 기득권을 꿰차고 있는 법조계 출신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법사위의 문턱을 넘지 못할 경우 사실상 이번에도 법제화가 쉽지 않아 보인다.

법조계의 반발은 결국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발의된 변리사법 개정안은 특허침해소송 시 변호사 대신 변리사만을 대리인으로 허용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처럼 변호사는 그대로 소송 대리인으로 반드시 참여하면서 법률 소비자 선택에 따라 변리사를 추가 선임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인데도 변호사협회를 필두로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이는 지재권 분쟁을 겪은 중소·벤처기업의 80%가 특허분쟁 발생 시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변리사를 침해 소송 대리인으로 선임할 수 없다'고 응답한 설문조사 결과와도 상충된다. 특허침해소송 시장에서 주요 고객들이 변리사의 소송 대리인 참여를 강력히 원하는데, 이를 변호사 단체들이 막고 있는 꼴이다.

이 뿐만 아니다. 현재 특허침해소송과 동일한 쟁점을 다루는 심결취소소송에서 변리사가 수십년 전부터 대리인으로 참여하고 있다. 두 소송이 대부분 병렬적으로 진행되는 것에 비춰볼 때 특허침해소송에서만 변리사 대리를 반대하는 변호사 단체의 주장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실제 특허침해소송에서 변호사가 변리사로부터 기술적 자문과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고, 법정에서 변호사가 판사의 기술적 질문에 답변하지 못하면 방청석에 있는 변리사가 써 준 쪽지로 변론하는 촌극도 벌어지고 있다.

일본 영국 중국 EU(유럽연합) 등 주요 국가에서는 진작부터 이런 변호사 단독 대리제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변리사의 대리를 허용하고 있다. 변호사에게 부족한 기술적 전문성을 변리사와 협업을 통해 보완할 수 있도록 법적 체계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특허 4대 강국이자 글로벌 지재권 선도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 후진적 지식재산 사법제도를 고수하고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공정과 정의를 최우선 국정 가치로 내세운 이번 정부에서 특허침해소송 대리제를 포함해 지식재산 분야에서 공정하지 못한 법적체계에 대한 과감한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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