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통상 이상주의 시대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미 간 통상 분쟁도 그랬다. 스크린쿼터, 소고기, 쌀, 철강, 지식재산권 등 전선(戰線)은 달라도 양상은 비슷했다. 관세라는 창과 국제법이라는 방패가 전쟁의 무기였다.
그런데 요즘 들어 통상이 달라졌다. 현실보다는 이상주의에 가까워졌다. 미국 주도로 시작된 새 통상질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가 대표적이다. 지난 9일 공개된 협상 개시 선언문엔 관세 인하, 시장 접근 등 현실적 혜택은 없었다. 대신 친환경·노동인권 등 이상주의적 용어가 꽉 들어찼다. 개발도상국이라면 IPEF는 실익이 아니라 제약이 될 수도 있다. 가령 미국에 섬유 관세 인하를 꾸준히 요청했던 베트남은 IPEF 체제에서 대미 수출은 못 늘리고 되레 섬유공장 노동자 인권 개선 압박만 받게 생겼다.
최근 한미 간 최대 통상 현안으로 떠오른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도 마찬가지다. 미국 정부는 장기 세제 혜택을 통해 인플레를 낮추고 기후변화 대응에 앞장서겠다는 이상주의적 취지에서 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현실에선 중국산 부품을 못 쓰게 하고, 한국에서 조립된 전기차엔 보조금을 안 준다. 결과적으로 미국 소비자들의 차 선택지가 좁아지고 돈을 더 내야 한다. 그래도 할 수 없단다. 실제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는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지난달부터 전기차 가격을 6000~8500달러씩 올린다고 밝혔다. 인플레 감축법이 인플레를 부추기는 역설.
IRA 해결을 위해 윤석열 대통령부터 외교·통상 실무자들까지 모두 발 벗고 나서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지적,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현실주의적 해법은 답이 아니다. 계산기를 치우고 한미동맹의 틀에서 푸는 수밖에 없다. 통상 분쟁도 이상주의로 풀어야 하는 시대가 돼버렸다.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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