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미중갈등..한국 '세계 로봇 제조기지' 절호의 기회

황순민 2022. 9. 12. 18: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반중정서·보안 우려 겹치며
美서 중국산 로봇 반감 높아
中생산 맡겼던 분위기 급반전
韓, 세계 로봇공장 대체후보로
저가 중국산에 잠식된 韓시장
고품질 로봇생산 기회 될 수도
안전·기술표준 등 제도 시급

◆ 로봇시장 빅뱅 (下) ◆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의 로봇 전문 스타트업 연합체 `실리콘밸리로보틱스(SVR)`에 소속된 스타트업이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시제품 모습. 이곳에선 325개의 로봇 스타트업이 제품을 개발 중인데, 656개 투자사가 연계돼 있다. [오클랜드 = 황순민 기자]
"한국에서 로봇을 생산하고 싶다. 생산이 가능한 업체를 소개해줄 수 있나."

미국 현지에서 만난 대다수의 로봇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을 대체하는 로봇 생산기지로 한국을 주목하고 있었다. 최근 미국에서 감지되는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중국산 로봇의 보안 우려, 품질 저하 문제와 맞물리면서 제조 기술이 뛰어난 한국을 전 세계 '로봇공장'의 잠재적 후보지로 보고 있는 것.

실제로 서비스나 자율주행을 비롯한 첨단 로봇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의 존재감이 부각되면서 미국에선 데이터 소유권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보조금으로 성장한 중국 업체들이 로봇이 수집한 정보를 언제든 중국 정부에 넘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미국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산 서빙로봇에 25%의 관세를 매기기 시작했다. 미국 현지 로봇 스타트업 A사 관계자는 "자율주행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 로봇이 축적하는 민간 데이터에 대한 가치는 갈수록 커지고 있고, 제조 로봇은 민감 기술에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면서 "(가격 경쟁력이 높은) 중국에 당연히 생산을 맡겼던 분위기가 급반전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한국 서빙로봇 스타트업 베어로보틱스는 '한국산 로봇' 양산 체제를 구축한 회사다. 서빙로봇은 전량 한국에서 생산한다. 제조업 기반이 갖춰진 한국 로봇 인프라스트럭처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중국산 로봇을 서빙로봇으로 활용하는 국내 업계의 움직임과 대조되는 행보다. 하정우 베어로보틱스 대표는 "최근 미국 시장에서는 중국 로봇을 배제하는 분위기"라면서 "미·중 갈등이 심화할수록 한국 로봇 생산업체에는 기회가 될 수 있고, 소량 다품종인 로봇 생산에서는 하이테크 제조 역량이 뛰어난 한국이 매우 큰 강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 로봇 제조의 물길이 한국으로 올 수 있게 제조 생태계를 구축해 기회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로 서빙로봇을 수출할 수 있는 점도 이점이다. 조이스 시도폴로스 매스로보틱스 공동 설립자는 "로봇 기술은 제조 패러다임을 바꾸고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면서 "한국은 스마트폰, 반도체, 자동차, 선박 등 제조 선진국이기 때문에 고품질·고급 로봇 제조 생산기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중국산 로봇은 자국 정부의 든든한 지원을 등에 업고 전 세계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17일 선양의 시아순 로봇자동화회사를 방문해 과학기술 혁신의 일환으로 로봇산업 육성 의지를 드러냈다.

중국은 상하이를 비롯해 베이징, 선전, 둥관, 선양 등 10곳에 로봇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했다.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차원에서 각종 보조금과 환급금 혜택 등을 퍼부으면서 중국 로봇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에서 앞서가고 있다. 업계에선 보조금 규모를 기업 이익의 20% 수준으로 추산한다. 중국 로봇 업체인 푸두로보틱스, 키논로보틱스 등이 한국 제품보다 25% 이상 싼 가격에 로봇을 납품할 수 있는 이유다. 실제로 서빙로봇 시장은 중국산이 대부분을 점유했고, 제조·물류로봇 분야에서도 저렴한 생산 원가를 무기로 중국산 로봇이 시장 지배력을 높이고 있다. 한국 내 서빙로봇과 물류 무인운반로봇(AGV)도 중국산이 장악하고 있다. 로봇업계 관계자는 "업체들은 서빙로봇의 제조 국가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지만, 업계에선 현재 국내에 보급된 서빙로봇의 70% 이상이 중국산일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미국은 중국산 서빙로봇에 관세를 매기지만 한국은 특별한 장벽이 없다.

한국이 로봇 제조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규제 완화를 비롯해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개별 로봇 제품에 대한 안전·기술 표준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어 정책 지원이 필요한 상태다. 특히 당장 쏟아져나오는 로봇 제품들의 성능이나 안전성을 담보할 규격이나 인증 등 표준화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요구다. 김주형 일리노이 공대 교수는 "로봇 생태계를 통해 우리나라 주력 산업의 경쟁력과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안도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특히 정부가 규제를 완화해 로봇산업이 테스트를 하거나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생태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선진국에서는 팬데믹 이후 기업들의 로봇 의존도가 급속도로 커지는 분위기다. 반복 업무가 많은 자동차 제조 공장에서 쓰이는 산업용 로봇뿐 아니라 물류나 서비스 등으로 분야·업종도 다양화하고 있다. 치솟는 인건비와 코로나19에 따른 근로환경 변화 등으로 로봇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 데다 기술 고도화로 로봇이 더 다양하고 복잡한 업무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실제 도입 사례가 늘고 있는 것. 미국 첨단자동화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의 작업로봇 주문은 16억달러 규모로, 전년 동기 대비 40%가량 늘었다. 업계가 통계를 집계한 이후 가장 큰 폭의 증가였다.

[캘리포니아 = 황순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