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보살인가
[세상읽기]
[세상읽기] 한승훈 | 종교학자·한국학중앙연구원
나는 대학생 때 본 <교육방송>(EBS) 시사프로그램 <똘레랑스>의 한 장면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다. 목사 자격을 가진 기독교인 교수라는 사람이 어느 불교 사찰에서 절을 하고 있었다. 이웃 종교에 대한 예의와 존경을 표현하는 것이라 했다. 종교학 전공 선택을 고려하며 종교 간 대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나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근사해 보였다.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그가 강남대학교의 이찬수 교수이며, 강의 내용과 종교 화합을 위한 실천이 문제가 되어 2006년에 대학에서 해직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맡았던 강좌는 종교학적 관점에서 기독교를 다루는 교양 강의였다. 기독교의 배타성과 편협함에 질려서 교회를 떠났던 학생들은 그 강의를 듣고 다시 교회에 출석할 마음을 가졌고, 비기독교인 학생들도 기독교의 진리에 대한 관심과 통찰을 얻었다고 한다. 그런 학생들에게 사찰에서 예의를 표했다는 이유로 교수를 대학에서 쫓아내는 모습은 어떻게 비쳤을까. 종교 간 화해와 관용을 위한 몸짓이, 배타적 교의에 영혼까지 얽매여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고작 ‘우상숭배’ 정도로 비쳤던 것일까. 오랜 복직 투쟁이 시작되었고 2010년 대법원 판결로 그는 강단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무리하고 불법적인 부당해직 사건은 한국 개신교의 배타주의가 위험수위를 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 있다.
근래에 이와 대단히 유사한 상황이 재현되었다. 2016년 1월 한 개신교인이 경북 김천 시내의 불교 포교당에 난입한 일이 있었다. 그는 “불교는 우상을 따르는 집단”이라며 불상을 바닥에 내팽개쳐 파손하고 승려들을 “마귀”라고 불렀다. 그는 이것이 “종교적 신념에 따른 행동”이며 “법당에 불을 질러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범인에게는 다른 원한 관계나 정신적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명백한 종교적 테러 사건이었다. 서울기독대학교의 손원영 교수는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개신교계가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는 것을 안타깝고 부끄럽게 여겼다. 그래서 공개 사과문을 올리고 법당 복구를 위한 모금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자 소속 대학에서는 그의 “신앙적 정체성”을 문제 삼아 파면을 결정하였다.
무리한 부당해직이었지만 대법원 판결까지는 수년이 걸렸다. 복직이 결정된 뒤에도 학교 쪽은 재임용을 미루고 연구실을 폐쇄하는 등 괴롭힘을 이어나갔다.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대학에서 추방하는 길이 막히자 이단 시비가 시작되었다. 2018년 서울 은평구 역촌시장에 있는 열린선원에서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예수님 오신 날 축하 법회’를 개최하고 해직 중이었던 손원영 교수에게 “불자들에게 예수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이 자리에서 그는 ‘예수와 육바라밀’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였다. 설교문에서는 기독교와 불교 두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와 영적인 통찰이 느껴진다. 그는 대승불교의 핵심에 보살 사상이 있으며, 대승의 보살이란 모든 인류가 해탈 혹은 구원을 이룰 때까지 다른 이들을 돕는 존재라고 설명한다. 그런 점에서 예수는 불교의 언어로 보았을 때는 보살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살예수”라는 표현은 아주 새로운 게 아니다. 이미 종교학자 길희성의 <보살예수>가 2004년에 발간되어 화제를 모았다. 손원영의 설교에서 독특한 점은 보살행의 세부적 실천 덕목인 여섯 바라밀을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어록과 행적에 대응시킨 것이다. 예수는 모든 인류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내놓았으며(보시) 신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고(지계) 극한의 모욕과 배신을 이겨내었을 뿐만 아니라(인욕) 끊임없이 공생애의 실천을 이어나가는 한편(정진), 깊은 기도를 수행하고 가르치며(선정) 궁극적인 지혜를 제시하였다는 것이다(반야). 나에게는 이 설교가 단순한 종교 다원주의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일개 제도종교 전통인 기독교의 교리적 언어 따위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예수의 위대함에 대한 찬가로 들린다.
지난 8월 손원영 교수의 소속 교단인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이단대책위원회는 그에게 제기된 이단 혐의를 기각하였다. 교계 일각에서는 이 결정이 신앙에 대한 타협이라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신앙을 도그마의 수호와 혼동하는 치졸한 믿음이다. 2000년 전 예수는 그러지 말라고 가르쳤고,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그를 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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