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그래프] (36) 경희대 인승찬 "내 목표는 연봉킹이 되는 것"

정다혜 2022. 9. 12.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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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억하고 뽑아 주세요" 2022 KBL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완생을 꿈꾸는 미생들의 농구 인생을 조명해본다.

[점프볼=정다혜 인터넷기자] 서른여섯 번째 미생은 경희대 3학년 인승찬(F, 197cm)이다. 끊임없는 성장으로 최고를 노리는 인승찬의 ‘미생그래프’를 살펴보자.

#‘나’를 보여주기 위한 악착같은 노력
인승찬은 초등학생 시절까지 특별한 꿈이 없었다. 운동에도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다. 부모님도 공부에 대한 압박을 크게 주지 않았다. 이런 그가 농구에 흥미를 느낀 이유는 초등학교에 없었던 농구 골대가 중학교엔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농구를 하면서 점점 관심이 생겼고 또래에 비해 큰 신장도 재미를 붙이는 데 도움이 됐다.

농구선수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계기는 따로 있었다. 1학년 기술·가정 첫 수업 당시 각자 장래희망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인승찬보다 두 칸 앞자리에 앉아있던 학생이 농구선수라고 하자 선생님은 그 학생의 꿈을 응원해줬다. 용기가 생긴 인승찬도 차례가 되자 농구선수라고 말했다.

그러나 선생님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초면임에도 ‘절대 안 된다’라는 말로 찬물을 끼얹었다. 그 말에 자극을 받은 인승찬은 농구선수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엘리트 농구를 위해 홍대부중으로 전학을 갔다.

주변 친구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모든 경기와 훈련에 성실히 임했다. 중학교 3학년 땐 무릎 부상에도 훈련에 참여하기도 했다. “선생님께선 ‘(승찬이는) 농구를 오래 안 했는데도 저렇게 열심히 한다’면서 그렇게만 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중학교 땐 큰 걱정 없이 농구했던 거 같아요”.

중학교부터 함께 해온 동기들과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할 것처럼 보였지만, 뜻밖의 일이 생겼다. 당시 한 학년 아래 후배들이 전력상 호평을 받고 있었는데 그의 포지션인 4번(파워포워드)이 공석이었다. 홍대부고 신입생 8명 중 장신 선수가 인승찬 포함 4명이었고 2명이 이미 유급을 한 상태였다.

홍대부고 이무진 코치는 후배들과 함께하기를 권유했다. 고민 끝에 제안을 승낙한 인승찬은 5월 즈음 유급을 했다. 그해 이무진 코치는 U18 남자농구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는데 이무진 코치는 인승찬에게 과제를 주고 떠났다.

체중이 많이 나갔던 탓에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다이어트를 하라고 한 것. 재활센터에서 다이어트를 시작한 인승찬은 쉼 없이 운동을 했고 대량 감량에 성공했다. “오셔서 놀라시더라고요. 5kg 정도만 뺄 줄 알았는데 20kg이나 빼서요(웃음)”.

#우승과 함께 성장하다
1학년 때 얻지 못한 우승 트로피가 2학년 종별선수권 대회에서 홍대부고 품으로 들어오게 됐는데 과정이 순탄하진 않았다. 2학년 첫 대회였던 제55회 춘계전국남녀중고농구 춘계연맹전 결승전에서 홍대부고는 전주고에게 우승을 내줬다. 인승찬도 추격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전주고의 기세를 막을 수 없었다.

제43회 협회장기 전국남녀중고농구 대회에서도 결승에 올랐지만, 무룡고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인승찬은 우승이 고팠고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절치부심하고 맞이한 제73회 전국종별농구선수권대회. 결승 상대는 춘계 때 우승을 내준 전주고였다.

홍대부고는 우승만 바라보면서 경기에 임했고 인승찬도 골밑에서 전주고 상대로 든든한 활약을 펼쳤다. 오랜 기다림 끝에 트로피를 거머쥔 홍대부고. 그는 노력으로 얻어낸 트로피로 우승의 맛을 느꼈다.

종별선수권대회 트로피는 우승 DNA를 선물했다. 다음 해 홍대부고는 춘계 대회, 종별선수권대회, 주말리그 왕중왕전에서 모두 우승하면서 3관왕을 달성했다. 그의 활약도 대회를 거듭할수록 좋아졌다.

종별선수권 대회 결승 상대가 휘문고였는데 휘문고 빅맨인 이두원(고려대) 상대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주말리그 1차 결선 군산고전에선 더블더블(16점 10리바운드 2어시스트)을 기록했고 준결승 명지고전에선 29점을 터뜨리기도 했다.

#새로운 무기, ‘슛’과 ‘책임감’
경희대 입학 후 대학 무대 출전을 고대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대학리그가 연기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10월이 돼서야 개막한 1차 대회도 갈증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아쉬움 속에서 1학년을 보냈지만, 2학년이 된 인승찬은 팀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1차 대회 고려대전에서 그는 30분 4초를 소화하면서 더블더블(15점 10리바운드 2어시스트)로 인상을 남겼다. 팀은 패배했지만, 그의 활약은 고학년 선수들 못지않았다.

대학리그 왕중왕전 건국대전은 또 다른 성장의 계기가 됐다. 포지션 상 주로 내각에서 플레이하는 인승찬은 외곽슛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그 경기에선 3점슛 성공률 100%(2/2)를 기록했다. “2학년 땐 (슛을) 많이 던지지 않았는데 그날 2개 다 들어가서 기억에 남아요. 그때부터 슛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3학년이 된 그는 다시 한번 건국대전에서 성장을 이뤘다. 트윈타워 전술을 사용하는 건국대 상대로 빅맨들의 활약이 중요했는데 그가 부진하면서 벤치로 물러났다. 그 상황에서 센터 이사성이 4쿼터 3분경 5반칙 퇴장을 당했다.

김현국 감독은 코치들과의 상의 끝에 인승찬을 투입했다. 5점 안쪽 팽팽한 승부. 그는 경기 종료 13초를 남겨두고 레이업 득점을 올렸고 팀은 1점 차 승리(74-73)를 거뒀다. 김현국 감독 믿음에 보답한 것이다.

“냉정하게 판단하면 그날은 제가 뛰면 안 되는 경기였는데 감독님이 믿어주셨어요. 제가 마지막에 위닝샷을 넣어서 이긴 경기였는데 팀원들한테 너무 미안해서 넣고도 그렇게 기쁘진 않았죠”. 부진으로 마음이 무거웠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결정적인 득점을 올렸다.

#화려한 무대와 성장을 꿈꾸며
3학년인 그가 얼리를 선언한 이유는 정신적인 단련을 위해서였다. “1, 2학년 때부터 4학년 다 채우고 나가는 것보다 얼리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제가 농구가 잘 되면 정신적으로 해이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프로에 가면 ‘나 자신이 농구를 생각하는 태도가 바뀌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커서 신청한 거 같아요”.

대학교 3학년이 돼서야 치르는 홈앤어웨이 방식에 경기장에 방문하는 팬들도 많아졌다. 팬들의 응원에 긍정적인 기운을 받아온 인승찬은 프로 무대에서 기대되는 점으로도 ‘팬’을 꼽았다. “대학리그 때도 응원 와주시면 엄청 좋은데 프로 가면 더 많은 팬이 계시잖아요. ‘그런 무대에서 뛰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어 그는 “제 역할에 맞게 팀에 도움이 되고 모든 팀에서 ‘저 선수는 꼭 필요한 선수다’ 싶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 제 목표가 연봉킹이 되는 건데 프로에 가서 연봉킹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사진_점프볼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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